제목 | 나의 묘비명과 승천(주님 승천 대축일) |
2008/05/02 8:34 |
나의 묘비명과 승천
주님 승천 대축일, 마태오복음 28,16-20
나의 묘비명을 무엇이라고 적을까?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G.B. 쇼).
“아름다운 희망이 여기에 매장되었다”(F. 슈베르트)
“모든 것이 남을 위해서였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J.H. 페스탈로찌).
조선 후기에 장원급제한 문신 박세당은
당쟁을 혐오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소론계인 그는 당대 실권을 쥔 노론에 맞서
주자학을 비판하다 유배 중에 죽으며
이런 묘비명을 남겼다.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묘비명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추구하다 갔는지 드러낸다.
묘비명을 보고
그 사람이 죽은 뒤 어디로 갔는지
짐작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명과 사랑을 위해 분투하다 간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갈 것이고,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발버둥치다 간 사람은
자기를 상실하고
영원한 파멸의 세계로 갈 것이다.
영원한 행복의 세계는 남을 위해 죽어야 살고,
지는 사람이 이기며,
자기를 낮추어야 높아진다는 역설의 세계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역설적인 세계를 창조하셨다.
고난과 죽음을 겪으심으로써
사랑과 정의와 자유의 세계,
고통과 죽음이 없는 세계,
참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창조하셨다.
지금 이러한 하느님 세계의 문을 열고 우리를 부르신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신 그리스도를 닮아야
이 세계로 올라갈 수 있다.
사랑의 힘으로 현세에 대한 집착과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에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이 지상에서 천상 시민으로서 살고
하느님께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의 한평생이
승천하기 위해 주어진 준비 기간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그러므로 하느님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해
미리 묘비명을 쓰면서 살자.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라고 쓸까?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고 쓸까?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F.M. 도스토예프스키) ,
“일이 즐거움이면 인생은 낙원이다.
일이 의무면 인생은 지옥이다”
(M. 고리키)라고 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