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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평화 간청하고자 파티마 성모성지로 떠나는 교황
   2023/07/24  17:10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앞에서 기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2017년 5월 12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초 포르투갈 사도 순방 기간 중 파티마 성모성지를 순례한다. 교황은 러시아와 20세기 교황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파티마 성모성지에서, 그리스도교 문화에 뿌리를 둔 유럽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다른 모든 전쟁의 종식을 특별한 방식으로 성모 마리아께 청하게 될 것이다.


Andrea Tornielli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째로 파티마 성모성지를 방문한다. 파티마 성모성지는 지난 1917년 5월 세 명의 어린 목동(두 명은 이미 성인품에 올랐고, 한 명은 시복시성 절차가 진행 중이다)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부터 인류의 미래에 관한 메시지를 받은 곳이다. 오는 8월 5일 헬리콥터로 이동해 파티마를 잠시 방문하는 이 일정은 당초 세계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리스본을 방문하는 교황의 포르투갈 사도 순방 일정엔 없었으나 나중에 추가됐다. 교황은 일찍이 지난 2017년 5월 파티마 성모발현 100주년을 맞아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성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파티마 성모성지를 방문한 바 있다. 교황이 파티마 성모님의 발치에 다시 다가가기로 결정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비극적인 전쟁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잊힌 전쟁들과 연관돼 있다. 교황의 이 같은 행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한 달여 만에 이뤄진 또 다른 중요한 행동, 곧 지난 2022년 3월 25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한 행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실제로 러시아 봉헌은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어린 목동들에게 당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16개월 전 교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저희는 평화로 가는 길을 잃었나이다. 저희는 지난 세기의 세계대전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된 비극의 교훈을 잊었나이다. 저희는 국제공동체로서의 책임을 경시하고, 민족들의 평화에 대한 꿈과 젊은이들의 희망을 저버렸나이다. (…) 바다의 별이신 어머니, 저희가 전쟁의 풍랑 속에서 난파되지 않도록 하소서. (…) 전쟁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핵위협에서 세상을 보호하소서.”

 


파티마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 (1967년 5월 13일)

 

파티마와 교황들의 역사
파티마 성모발현은 20세기 교황들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들의 개인사와도 얽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5월 5일,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묵주기도 후에 바치는 전통적인 로레타의 성모 호칭 기도문에 “평화의 모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를 추가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5월 13일, 파티마에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첫 발현이 일어났다. 같은 날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자신의 두 번째 후계자가 될 에우제니오 파첼리를 시스티나 성당에서 주교로 서임했다. 비오 12세 교황이 된 파첼리는 1942년 10월 31일 “오류나 불화로 갈라진 민족들”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봉헌했다. 1967년 5월,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파티마 성모발현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독재자 살라자르 정권하에서 신음하고 있던 포르투갈을 방문해 파티마를 순례한 최초의 교황이 됐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파티마로 떠나기 전 “이 순례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영적 동기는 다시 한번 더 겸손하고도 간절하게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파티마에서 행한 강론을 통해 “파괴와 죽음, 혁명에 대한 생각을 품지 말라”고 촉구했다. “공동의 위로와 공동의 연대에 대한 생각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현재와 미래 세대의 역사에 결정적일 수 있는 이 시간의 중대함과 위대함을 생각하십시오.”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확신에 찬 어조로 언급한 역사적 상황의 중대함이란, 한편으로는 “끔찍하고 치명적인 대량 살상 무기의 보유”와 과학적, 기술적 진보와 나란히 가지 못하는 윤리적 진보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의 절대다수”가 빈곤과 궁핍의 상태에 놓여 있는 상황을 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세계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동정 마리아의 발치에 모여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 여기에서 세상과 세상의 운명이 얼마나 거대하고 극적인 형태로 제시되는지 지켜보십시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피격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피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메시지
파티마의 역사와 2000년까지 비밀에 부쳐졌던 세 어린 목동에게 전해진 파티마의 메시지가 베드로의 후계자(교황)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히게 된 것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재위 때부터였다. 1981년 5월 13일 오후 5시17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튀르키예 출신 테러범 알리 아그자의 암살 시도로 중상을 입었다. 많은 피를 흘린 채 거의 임종 직전의 상태로 제멜리 종합병원에 이송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훗날 자신의 생존을 기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그로부터 19년 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파티마의 셋째 비밀을 공개했다. 그것은 폐허가 된 도시를 지나 산꼭대기에서 마침내 죽임을 당하는 “흰 옷을 입은 주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 이미지가 바로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랜 재위 기간 동안 1982년, 1991년, 그리고 2000년 대희년에 각각 파티마 성모성지를 세 차례 순례했다. 그의 후계자인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2010년 포르투갈 사도 순방 기간 중 파티마 성모성지를 순례했다. 당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파티마의 예언적 사명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착각하는 것”이라고 공언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파티마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며 성 학대 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늘날 이 메시지에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점은 교황과 교회에 대한 공격이 외부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교회의 고통이 바로 교회 내부에서, 곧 교회 안에 존재하는 죄로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 이 역시 우리가 항상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정말 무서운 방식으로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가장 큰 박해는 외부의 적들로부터 오는 게 아니라 교회 내부의 죄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교회는 참회를 절실하게 다시 배워야 합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원문 : https://www.vaticannews.va/ko/pope/news/2023-07/papa-fatima-implorare-pace-ucraina-mond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