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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쌀 한톨의 기적 (한국 SOS 어린이마을 50주년)
   2013/06/25  10:20

한국 SOS 어린이마을 50주년


2013년 6월 22일(토) 11:00


 먼저 한국 SOS어린이마을 50주년을 축하드리며 하느님께서 큰 은총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오늘 이 행사를 위해서 지난 27년간 국제 SOS어린이마을 총재를 역임하셨던 헬무트 쿠틴 명예총재께서 참석하셔서 더욱 이 자리가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대원장을 하신 하 마리아 여사와 2대 원장을 하신 이 프란치스카 여사께서는 연세도 많으시고 건강이 좋지 않아 오시지 못한 점 대단히 아쉽지만 우리는 이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 SOS어린이마을 50주년을 맞이해서 지난 50년간 한국 SOS어린이마을을 위해 헌신해왔던 대구, 서울, 순천 마을 역대 원장님들과 수많은 어머니들과 봉사자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후원해주신 모든 은인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또 한 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50주년 팜플렛 표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어린이입니다.”-헤르만 그마이너. 이분이 이 지구상에 SOS어린이마을을 최초로 설립한 분입니다. 그리고 50년 전에 ‘쌀 한 톨의 기적’으로 한국 SOS어린이마을을 설립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1959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예쁜 서양 처녀 두 사람이 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한 날입니다. 

 그 중 한 분이 오스트리아의 하 마리아씨고, 또 한 분이 영국 스코틀랜드의 양 수산나씨입니다. 이분들이 대구에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이 삼덕동에서 구두닦이 고아 소년들을 보호하고 돌봐주는 ‘가톨릭 근로소년의 집’을 지어 운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 마리아씨는 SOS어린이마을 창설자인 헤르만 그마이너 총재를 알게 되어 한국에도 SOS어린이마을이 설 수 있도록 요청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져서 50년 전 이 자리에 비유럽 지역으로서는 최초의 SOS어린이마을이 설립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양수산나씨는 1962년에 대구 최초의 여성 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가톨릭여자기술원’을 설립하여 오랫동안 원장으로서 일하셨던 것입니다. 

 50년 전 SOS어린이마을이 대구에 설립될 때 일을 왜 ‘쌀 한 톨의 기적’이라고 하는지 아시지요? 팜플렛에도 간략하게 나옵니다만, 하 마리아씨의 연락으로 1963년 2월에 헤르만 그마이너 총재께서 대구에 오셔서 서정길 대주교님을 면담하시고 본국으로 돌아가시면서 구두닦이 소년들이 한 줌씩 모은 쌀 한 말을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이 쌀을 한 알씩 정성스레 포장을 하여 유럽 각지의 은인들과 후원단체에 보내 쌀 한 알에 1달러를 바꾸어 기부하면 한국 땅에 SOS어린이마을을 짓겠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쌀 한 말이 몇 톨이 될까요? 한 줌이 한 500알 되나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대구에 드디어 SOS어린이 마을이 서게 되었고 1982년도에는 서울과 순천에도 SOS어린이마을이 설립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하느님의 크신 은혜이고 ‘쌀 한 톨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대구대교구가 2년 전에 한국에서는 두 번째로 100주년을 지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지고 종교자유가 선포되고 자유롭게 선교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한국천주교회는 단순히 선교만 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 특히 고아와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펼쳤던 것입니다. 

 대구본당(계산본당)의 초대주임 김보록 로베르 신부님의 1894년-95년 사목보고서에 의하면 고아들과 버려지는 아이들을 위하여 ‘성영회’ 사업을 하고 있었고 또 가난한 노인들의 장례를 도와주는 ‘연령회’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구 초대 교구장이신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는 서울의 샬트르 성바오로수녀님들을 대구로 초청하여 고아들을 위한 보육원을 하도록 맡겼습니다. 이것이 ‘백백합보육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성심시녀회를 창설한 남대영 루이 델랑드 신부님은 1946년에 ‘성모자애원’을 설립하고 수많은 고아들과 노인들을 돌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교구는 오래 전부터 고아와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펼쳐왔었는데 그 중에서도 SOS어린이마을은 아주 혁신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식사 중에 동촌본당 출신인 박영일 신부님(사목국장)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집 가까이에 동촌유치원이 있었지만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나는 유치원에도 못 다녔지만 내 또래의 SOS어린이마을 아이들은 다 다니더라. 그들은 공부만 좀 잘 해도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더라. 소풍을 가도 도시락 반찬이 우리보다 얼마나 좋은지! 계란후라이에  소세지까지! 그들이 부러웠다. 왜 우리 부모님은 살아 계셔서 내가 SOS어린이마을에도 못 들어가게 만드는가!”

 올해가 정전 60주년입니다. 6.25전쟁이 끝난 지 오래 되니까 고아원들이 문을 닫든지 다른 복지사업으로 전환하든지 하였는데 SOS어린이마을은, 옛날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그런대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여기에 어떤 강점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강점이 바로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가정공동체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가 계시고 가정이 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고 환경인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 일을 일찍부터 SOS어린이마을이 해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할 일이고 경이로운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마르코 10, 13-16)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거기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어린이들을 안으시고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마음이 ‘세상의 모든 어린이는 우리의 어린이’라고 한 헤르만 그마이너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는 또한 우리 모두의 마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요한1서4,7-12)에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7-8)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2)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알고, 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눈으로 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 모두 이 땅의 모든 어린이를 사랑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마음’으로 한국 SOS어린이마을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