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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시 걷는 파스카의 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진출 125주년 감사미사)
   2013/07/23  9:57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진출 125주년 감사미사

 

2013년 7월 22일. 성 김대건 기념관

 

 먼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한국진출 125주년을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이 좋은 날을 맞이하여 서울관구와 대구관구의 모든 수녀님들이 다 모이신 것 같습니다. 대구가 좀 덥지요? 서울관구에서 오신 수녀님들은 더 더울지 모르겠습니다. 장마철이라고 하는데 대구는 여전히 햇볕이 쨍쨍합니다.
 두 분의 불란서 수녀님들과 두 분의 중국인 수녀님들이 125년 전 바로 오늘 7월 22일에 조선 땅 제물포에 도착하셨는데, 그날도 오늘처럼 덥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지금도 수녀님들의 수도복이 더위에는 취약하다고 생각되는데 그 당시에 수녀님들이 입었던 수도복은 더 더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그 모든 어려움들과 불편한 것들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희생으로 봉헌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미사 주례와 강론을 부탁받고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역사와 영성에 대해서 잠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조선교구 제7대 교구장이신 블랑 주교님께서는 1887년 7월에 불란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모원에 수녀 파견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게 됨으로써 사건은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그 당시 블랑 주교님의 편지 일부가 수녀님들의 9일기도에 실려 있는 것을 봤는데 내용이 아주 간곡하였습니다. 주교님의 그런 간곡한 요청을 거절할 만한 강심장을 가진 수녀님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분의 불란서 수녀님들이 샬트르를 떠나서 마르세이유항을 출발하였고 한 달 여 만에 베트남 사이공에 도착하여 중국인 수녀님 두 분과 함께 다시 배를 타고 또 한 달 여 만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땅 제물포항에 그것도 새벽 5시에 도착하였다고 합니다. 
 그날 네 대의 가마에 나누어 타고 서울까지 갔다고 하는데 그 좁은 가마 속에서 서양 수녀님들이 다리도 못 펴고 얼마나 오랫동안 땀을 흘리며 고생하셨겠나 상상이 갑니다.
 이렇게 네 분의 수녀님들이 서울 정동에 도착하여 공동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또 일주일 후에는 다섯 명의 첫 한국 처녀 지원자들이 들어와 함께 살게 되는데 이것이 한국천주교회의 첫 수도회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설정되고 계산주교좌성당에 본당학교를 위해 서울에서 두 분의 수녀님들이 파견되었고 1915년에는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이셨던 드망즈 주교님의 요청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대구 수녀원이 설립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48년에 한국 수녀원이 정식 관구로 승격되었고 1967년에는 서울과 대구 두 관구로 분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25년 전에 외국인 수녀님 네 분으로 시작한 수녀회가 오늘날 1000명을 넘는 회원으로 성장한 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혜요 섭리가 아닐 수 없고, 따라서 우리 주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뜻 깊은 날에 창설자 루이 쇼베 신부님과 협조자 마리 안 드 띠이, 그리고 수녀회를 한국에 초청하신 블랑 주교님과 뮈텔 주교님, 그리고 드망즈 주교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125년 전에 낯설고 열악한 이 땅에 오셔서 수녀회를 시작한 네 분의 수녀님들과, 초창기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한 한국 수녀님들, 그리고 6.25동란 때 공산당에 의해서 죽음의 행진 중에 돌아가신 한국관구 초대 관구장이셨던 베아트릭스 수녀님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교회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시고 돌아가신 수많은 선배 수녀님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한국진출 125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천주교회의 주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대구의 교구장으로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수녀님들이 ‘세속을 떠나 하느님과 교회의 유익과 이웃의 필요를 위하여 자신을 바친다.(마리 안 드 띠이)’는 정신에 따라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고 봉사함으로써 이 땅의 수많은 영혼을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에 크나 큰 기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걷는 파스카’인 것으로 압니다.
 우리가 이런 미사를 드리고 행사를 하는 것은 단순히 125주년을 기념하고 감사드리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파스카의 길을 걷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과 표현으로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가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한편으로는 처음의 복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우리의 주보이신 성 바오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사는 것이며, 창설자의 정신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이사 61,1-3)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께서는 오늘 제2독서인 1코린토 9,19-25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마태오 25,31-40) 마지막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오늘 우리가 들은 이 성경말씀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영성이요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성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은 오늘날 급변하는 이 시대에, 성소자가 줄고 영세자가 줄고, 세상은 자꾸만 신앙과 멀어져가는 이 시대에 살면서, 하느님과 교회의 충실한 딸로서 복음의 증인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파스카의 여정을 새롭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