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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깝고도 가까운 교회 (나가사키대교구 다카미대주교 일행 방문 미사 강론)
   2013/07/11  11:44

나가사키대교구 다카미대주교 일행 방문 미사


2013년 7월 8일(월) 11:00 성모당 


 일본 나가사키대교구의 다카미 대주교님 일행의 우리 교구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번 방문단은 다카미 대주교님과 총대리 신부님, 사목국장 신부님, 비서신부님, 그리고 나가사키대교구의 평신도회장님을 비롯한 평신도 간부 10분과, 예수성심수녀회에서 나가사키에 파견한 율리엣다수녀님이십니다. 

 이분들은 어제부터 내일까지 우리 교구를 둘러보게 되는데 어제 저녁에는 삼덕 젊은이 본당을 방문하여 젊은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교구의 현황과 조직, 그리고 교구 시노드를 개최한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교구청의 각 부처를 둘러보게 됩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성정하상본당을 방문하고 소공동체 현장 한 곳을 방문하여 우리 신자들과 대화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관덕정순교기념관과 언론사들을 방문하고 계산주교좌성당에서 낮미사를 드린 후 떠나시게 될 것입니다. 대구에 머무는 동안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가사키대교구는 일본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대교구입니다. 특히 바오로 미끼와 동료 순교자 26성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교구입니다. 지난해가 일본 26성인 시성 150주년이었는데 제가 작년에 교구 순례단을 구성하여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그 행사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다카미 대주교님은 2년 전에 있었던 우리 교구 100주년 행사에도 오셨고 작년 가을에 있었던 제2차 교구 시노드 폐막미사에도 참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오셨으니까 3년 동안 해마다 우리 교구를 방문하신 셈입니다. 

 우리 교구와 나가사키 교구가 이렇게 교류가 많아지고 가까워지게 된 것은 전임 교구장이신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님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대주교님께서는 한 15년 전부터 나가사키 성지순례 코스를 개발하셨고 몸소 교구 간부들을 데리고 성지순례 안내까지 몇 차례 하셨습니다. 

 특히 이대주교님은 1945년 8월 9일에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부인을 잃고 자신도 원자병에 걸려 몇 년 동안 투병하다가 돌아가신 나가이 다카시 박사를 좋아하셔서 그분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책 ‘사랑으로 부르는 평화의 노래’를 저술하셨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마지막 투병생활을 했던 한 두 평짜리 집 ‘여기당’을 순례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갔을 때 이대주교님께서 버스 안에서 읽어주셨던 다카시 박사의 글이 생각납니다. 그것은 원자폭탄에 의해 순식간에 산화되어버린 우라카미 주교좌대성당의 수 만 명의 신자들의 장례미사 때 다카시 박사께서 읽었던 조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대주교님은 ‘한국 여기회’를 설립하시어 다카시 박사의 ‘如己愛人’ 정신이 이 땅에도 펴져나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중고등학생들로 하여금 다카시 박사의 저술들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여 우수 작품들에는 시상을 하고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과 행사들이 우리 교구와 나가사키 교구와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도록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교구 제3대 교구장이 일본인인 이레네오 하야사카 주교님이십니다. 이분은 일본 센다이 출신인데 2004년에 이대주교님과 저는 센다이에 가서 하야사카 주교님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조카 두 분(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한 분)을 만나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하야사카 주교님은 1942년 8월 30일에 교황님으로부터 대구대목구장으로 임명을 받고 그 해 10월에 대구에 부임하셨고 12월 25일에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주교서품식에는 제2대 교구장이셨던 무세 주교님이 주례를 맡으셨고 서울의 노기남 주교님과 일본 나가사키 교구의 야마구치 주교님이 조례를 맡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야사카 주교님의 형님이 야마구치 주교님의 전임 나가사키 교구장 주교님이셨습니다. 

 하야사카 주교님은 1946년 1월 7일 샬트르 수녀원 병실에서 선종하셨는데 3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제강점기의 그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그 직무에 최선을 다 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최재선 신부님이 영천 자천본당에 계실 때 시국강연회를 하였는데 강연 내용이 문제가 되어 영천경찰서의 유치장에 갇혀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야사카 주교님께서 영천경찰서장을 만나 교섭을 하여 최신부님을 석방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 최재선 신부님은 그 후 1957년 부산교구가 설립될 때 부산교구 초대 교구장 주교님이 되신 분입니다. 

 하야사카 주교님은 1945년 8월 15일에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할 때 본국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었으나 계속 우리 교구에 머물면서 주교로서의 소임을 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문희 대주교님이나 나가이 다카시 박사님이나 그리고 하야사카 주교님 등이 가교가 되어 우리 교구와 나가사키 교구가 더욱 가까워지고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면 좋겠습니다. 

 어제 오후에 다카미 대주교님 일행이 우리 교구를 방문하시고 가진 첫 환영모임에서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노래를, 그것도 어느 한 사람이 나서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방문단 모두가 함께 부르는 것을 듣고 저는 감동을 받습니다. 그 노래는 원폭에 의해 부서지고 날라 간 우라카미 성당의 종을, 살아남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복원하여 드디어 종을 울리는데 그 소리를 듣고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지은 노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종소리는 위로와 격려의 종소리였고 전쟁 종식의 종소리이며 평화의 종소리였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도 역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매끄럽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에부터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두 교구 간에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가깝고도 가까운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두 교구와 우리 모두가 아시아를 복음화하고 이 땅에 평화를 심는 데 하나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