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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열정 9제12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폐막미사 강론)
   2013/09/09  11:46

제12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폐막미사


2013년 9월 5일(목) 수원 아론의 집


 지금 우리는 제12차 소공동체 전국모임 폐막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진행된 이번 모임이 유익했습니까? 

 그런데 제가 오늘날 한국의 소공동체 운동을 적극적으로 찬동한다든가 지원하는 사람이 아닌데 왜 제가 이 미사에 초대받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년에도 미사 주례 부탁을 받았었는데 그 때 무슨 일 때문에 들어주지 못 했었습니다. 올해 또 부탁을 하기에 마음이 약한 저로서는 또 거절하기가 어려워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특별히 소공동체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힘이 될 만한 말씀을 별로 드릴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 해야 되니까 소공동체에 대한 저의 생각과, 그동안 듣고 보고 경험한 일들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소공동체운동이 시작한 지가 20년이 되었지요? 요즘은 소공동체를 교회의 기본 조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운동’이라는 말을 잘 안 붙이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한국교회에 소공동체가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많이 확산이 되고 발전이 된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한국의 적지 않은 교구들이 소공동체가 앞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밝게 해줄 것처럼 생각하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을 교육하고 연수를 시키고 또 실제로 몇몇 본당들은 소공동체들의 공동체로 변모하려고 많은 노력들을 기울여 왔습니다만, 전반적으로 볼 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진전이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는데 분명히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소공동체운동은 본당신부님들이 이 운동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본당에서 그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정착할 수가 없는데, 왜 많은 신부님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지, 신부님들이 오히려 소공동체운동에 다들 한 마디씩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소공동체 하시는 분들이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소공동체운동에는 본질적인 요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소그룹으로 모인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느님의 말씀 중심으로 모인다는 것이며, 셋째는 복음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정신이고 교회로서, 공동체로서 완벽한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옛날 공소의 모습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공동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있어왔던 것인데 그런데 오늘날 새삼스럽게 소공동체가 살 길이라 하면서 각 교구마다 각 본당에 적용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기에 그럴까요? 죄송합니다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도그마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요? 소공동체만을 위한, 소공동체만에 의한 도그마!


 저는 지난 5월에 남미 볼리비아에 다녀왔습니다. 볼리비아에는 저희 교구 신부님 일곱 분이 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본당은 세 개인데 세 분의 신부님들이 한 본당을 맡고 있는 본당이 두 개이고, 또 한 분은 밀림 속에서 인디오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 세 분이 사목하고 있는 한 본당(그리스도 살바돌 본당)을 예로 들자면 그 본당은 산타 크루즈라는 도시의 한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본당은 시내 지역이 네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구역에는 본당만한 성당이 있었으며 각 구역마다 수녀님들이나 평신도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날 본당과 함께 비슷한 시간에 세 신부님들이 구역에 나가서 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영성체 교리나 교회활동들이 구역 안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구역들은 본당이 있는 구역과 비슷한 규모의 구역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본당은 시내 구역뿐만 아니라 시골 공소도 열 개 가량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포장 시골길을 자동차로 두 시간이나 달려서 어떤 공소를 방문하였는데 공소 건물이 없는 것입니다. 풀밭 가운데 있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야외 미사를 드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온 음식들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아이들까지 한 40여 명 모인 것 같았는데 한 가족 같은 진정한 소공동체의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의 상황은 이런 남미의 상황과는 분명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신부님은 말하기를, ‘엎어지면 코 닿는 데가 성당이고 부딪치는 것이 신부 수녀인데 소공동체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나?’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가 지금까지 반모임을 잘 하고 있었고 어떤 나라 교회보다도 평신도 사도직이 활발한 교회인데 소공동체운동이 뒤늦게 들어와서 혼란을 주고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후로 많은 신심운동이 도입되기도 하였고 또 많은 평신도사도직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많은 신심운동과 단체들의 활동이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에 참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공동체를 열심히 하는 본당에서는 그런 신심운동이나 평신도 단체들이 위축되거나 사라져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소공동체를 잘 하려면 반원들이 매주 모여야 하니까 다른 신심운동이나 단체가 배겨낼 수가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모습을 본 많은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소공동체운동에 등을 돌렸던 것이 아닌가도 생각됩니다. 그래서 마산교구의 이제민 신부님은 ‘소공동체가 교회의 기본 조직이 아니라 다른 신심운동이나 단체처럼 하나의 운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어떤 지역을 바탕으로 한 기초공동체만 소공동체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도 역시 그들 나름의 소공동체임을 인정해야 하고, 또한 그 다양한 소공동체들이 복음정신으로 움직이도록 이끌 뿐만 아니라 그들의 활동들을 촉진하고 격려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사목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5,1-11)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은 던져 고기를 잡아라.”고 말씀하시자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몬은 태생이 갈릴래아 호숫가 출신이고 직업이 어부이기 때문에 갈릴레아 호수를 자기 손바닥처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잡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실 것 같은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도 시몬 베드로와 같은 이런 유연성과 포용성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공동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당이 주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쇄신되고 활성화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지역 사회를 복음화 하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날 좋은 본당은 어떤 본당입니까? 좋은 본당은 본당신부가 소공동체를 열심히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본당은 본당신부님이 레지오를 열심히 육성시키고 잘 지도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님들이 얼마나 신자들을 주님께서 하셨듯이 그렇게 사랑하고 헌신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신부님의 어떤 사목 방법보다도 착한 목자로서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교회 쇄신’이며 ‘새로운 복음화’라는 말일 것입니다. 

 쇄신刷新이라는 말은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쇄신되어야 할 것이 없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쇄신은 어떤 방법의 쇄신만이 아니라 정신의 쇄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가장 큰 화두는 ‘새로운 복음화’입니다. 새로운 복음화라는 말 속에는 쇄신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 새로운 열정.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새로운 열정입니다. 

 

 올해 소공동체 전국모임의 주제가 “새로운 열정,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7)”입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레야 호숫가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특별히 세 번이나 질문하신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그 사랑의 열정이 로마를 복음화 했고 세상을 복음화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베드로와 같은 굳은 믿음과 함께 유연성과 포용성,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열정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