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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 (논공본당 25주년 및 견진성사 강론)
   2013/10/14  9:18

논공본당 25주년 및 견진성사


2013. 10. 06. 연중 제27주일. 다해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먼저 논공본당 설립 25주년을 축하드리며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여러분과 이 본당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오늘 견진성사 받으시는 교우분들에게도 축하를 드리며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오늘 논공본당을 방문하니까 2000년 3월에 저의 아버님 장례미사를 이 성당에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후 제가 주교가 된 후로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갈 때 화원본당 소속으로 갔었고 신부가 될 때도 화원본당 출신으로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 1988년에 화원본당 소속 공소였던 논공공소와 강림공소가 합쳐져서 논공본당이 되었기 때문에 강림공소 출신인 제가 그 후로는 논공본당이 제 본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직자가 되면 소속 본당이 없고 소속 교구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이 논공성당에 오니까 제 고향에 온 것 같고 제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용술 회장님도 보이고 김일랑 회장님도 참으로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논공본당은 1988년 당시 희망원 원장을 하시던 조정헌 신부님께서 이문희 대주교님께 건의해서 두 개 공소를 합쳐서 본당으로 승격을 시킨 것으로 압니다. 성당은 장차 논공에 짓기로 하고 성당을 지을 때까지 미사는 강림공소에서 드렸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조신부님께서는 강림에 있는 저희 집 과수원에 임시 사제관을 지어서 몇 년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역시 희망원장 겸임으로 2대 주임을 하셨던 최영수 대주교님도 그 사제관에서 몇 달 동안 사셨던 것으로 압니다. 

 1991년에 3대 주임으로 오신 정삼덕 신부님이 1995년에야 이곳에 성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 땅은 그 옛날 술도가를 하시며 논공공소 회장을 하셨던 김재복 이시도르 회장님이 봉헌하신 땅입니다. 그래서 본당 주보성인을 성 이시도르로 했던 것으로 압니다. 

 지난 25년 동안 본당 발전과 지역 복음화를 위해 수고하신 역대 본당 신부님들과 회장님을 비롯한 모든 교우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그리고 본당이 설립되기 전 그 옛날 공소시절부터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시다가 돌아가신 공소회장님들과 선배 교우들의 수고와 공로도 우리가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26명의 교우들이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에게 미리 축하를 드리며 하느님의 축복과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빕니다.

2000년 전 오순절 날에 성모님과 사도들 위에 내렸던 그 성령께서 오늘 이분들에게 내리시어 하느님의 성숙한 자녀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확고하게 변화시켜주시고 그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견진성사는 주교의 안수기도와 크리스마 성유의 도유로 ‘성령 특은의 날인’을 받는 성사입니다. 견진성사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견진성사는 우리가 예전에 받았던 세례성사를 완성하게 하고 성령의 은혜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확고하게 해주는 성사입니다. 그래서 견진성사를 영어로는 (‘Sacrament of) Confirmation’이라고 합니다. Confirm한다, 즉 ‘확실하게 한다.’ ‘확고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견진’이라고 할 때 ‘견’자가 ‘굳을 堅’자입니다. ‘굳게 한다,’ ‘단단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단단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예전에 물과 성령으로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지만 오늘은 특별히 성령의 일곱 가지 은혜를 받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일곱 가지 은혜를 ‘성령칠은’이라고 하는데 슬기, 통달, 의견, 지식, 굳셈, 효경, 경외심이 그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 성령의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튼튼하게 하며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령칠은의 은혜를 받게 되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지게 되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 있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으로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9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칠곡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 성지까지 도보성지순례를 하고 성지에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한 1500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하여 순교자성월을 뜻 깊게 보낸 것 같습니다. 

신나무골 성지는 1885년에 경상도 지방에 첫 본당이 들어선 자리이고 오래된 교우촌입니다. 그리고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이 묻혀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경북 칠곡에 살던 이선이 엘리사벳은 1860년 경신박해가 일어났을 때 신나무골로 피신 왔다가 다시 팔공산 한티로 피난 갔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쫓아온 포졸들에게 붙잡혀서 배교하라고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그 때 이선이 엘리사벳이 대답한 말이 “나는 죽어도 성교를 믿겠소.”였습니다. 성교를 믿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거룩한 교회, 즉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죽어도 믿겠다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이런 말을 하고 하느님을 증언한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도 성령으로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시고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복음(루카 17, 5-10)을 보면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올해 ‘신앙의 해’의 주제성구입니다. 

전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께서 ‘신앙의 해’를 선포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신앙의 열정, 신앙의 기쁨, 신앙의 아름다움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 특히 아버님으로부터 신앙을 받아먹고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일제강점기부터 공소회장을 하시다가 해방 후에 호열자로 돌아가신 후 아버님이 회장직을 이어받으셨는데 1988년 논공본당이 설립될 때까지 하셨으니까 40년 넘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 매주일 마다 공소에 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아버님의 강론말씀과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저를 포함하여 10남매를 낳으셨는데 누나 둘을 어릴 때 잃었지만 8남매를 잘 키웠습니다. 저희 집은 조그만 과수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고 벼농사를 많이 하였으니 농사일과 집안일로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런데 모내기나 가을걷이 때같이 아무리 바빠도 가족이 다 함께 바치는 조과(아침기도) 만과(저녁기도)를 한 번도 빠트린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모님의 이런 철저한 신앙생활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신앙의 대물림이 큰 숙제입니다. 부모님의 신앙이 그대로 자녀들에게 대물림이 되어야 하는데 그곳이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냉담하는 자녀들, 냉담하는 가족들이 하루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우리의 생명이고 목숨이고 구원입니다. 신앙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줘야할 가장 소중한 유산인 것입니다.

 

 논공본당이 25년이 되었지만 세월만큼 크게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 군청까지 들어섰고 해서 좀 나아지리라고 기대합니다만 그런 외부적인 조건보다는 논공본당 교우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기도하고 이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논공본당이 이 지역의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올바른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 하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신앙의 대물림이 제대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저를 따라서 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카 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