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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로 돌아갈 때까지 (위령미사 강론)
   2013/11/07  12:2

위령미사(성직자묘지)


2013. 11. 05


 올해 우리는 젊은 신부님 두 분을 하느님께 보내드렸습니다. 그 두 분 중에 한 분(황주철 로제리오 신부)의 육신은 이곳 남산동에 묻혀 계시고, 또 한 분(이형문 안토니오 신부)의 육신은 군위에 새로 조성한 성직자 묘지에 묻혀 계십니다. 

 지난 토요일 ‘위령의 날’에 제가 군위에 가서 성직자 묘지와 새로 조성한 봉안담 ‘성모의 정원’을 축복하였습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신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대신덕’이라고 하는데, 특히 망덕, 즉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자가 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건이라고 생각됩니다.

 본당에 있을 때 보면 신자가 되겠다고 예비자교리반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왔다.’고 대답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이 신자가 되기 위한 근본적인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고, 근본적인 목적은 영원한 생명이며 영원한 삶인 것입니다. 

 옛날 교리문답 첫 질문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느뇨?’입니다. 대답은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느니라.’입니다.

 요즘 이 교리를 제대로 잘 안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우리가 ‘믿는다.’고 할 때 무얼 믿는다는 것입니까? 교리문답에 ‘사람은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했습니다. 그리니까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섬길 줄 아는 것,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나의 주님, 나의 아버지로 공경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하느님께서 주시겠다는 영원한 생명을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오 11,28)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은 사람이 죽는 것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했습니다. 

 어디로 돌아갔다는 말입니까? 돌아간다는 것은 왔던 데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왔던 데가 어디입니까? 우리는 다 피조물이고 지음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지음 받았습니까? 하느님한테 지음 받았습니다. 지음 받으신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작별인사를 adieu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addio라고 하고 스페인 사람들은 adios라고 합니다. 이 말들은 라틴어 ad Deum, 곧 ‘하느님께로’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장례미사 때 하는 마지막 예절이 ‘고별식’입니다.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 것이며, 하느님께로 고인을 보내드리는 예절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로 돌아가신 분들은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령미사 감사송에서 사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지금까지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께 돌아가신 분들이 맞이하는 그 새로운 삶이 하느님 곁에서 영복을 누리는 삶이 되도록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언젠가, 혹은 곧 하느님께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4월과 8월에 젊은 신부님 두 분을 떠나보내면서 죽음 앞에서는 순서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늘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