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그룹웨어
Home > 교구장/보좌주교 > 교구장 말씀
제목 생명을 주는 어머니가 되어 주십시오. (예수성심시녀회 종신서약미사 강론)
   2013/12/13  10:13

종신서약미사 


2013. 12. 09. 예수성심시녀회. 


 먼저 오늘 종신서약 하시는 다섯 분의 수녀님들, 축하드리며 주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는 네 분의 수녀님들이 첫 서약을 하셨는데 이분들에게도 축하를 드리며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원래는 어제 날짜입니다만 어제가 대림 제2주일이기에 오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 주보 축일이기도 하고, 또 예수성심시녀회 설립일이기도 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한국 교회와 예수성심시녀회를 잘 돌보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 ‘신앙의 해’를 잘 지냈습니까? 시작하는가 싶더니 지난 달 연중 마지막 주일에 끝나버렸습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들에게 은총의 기회로 주어진 ‘신앙의 해’를 열심히 잘 살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반성과 함께 개인적으로 주님께 용서를 청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해’ 정신은 계속됩니다. ‘신앙의 해’는 현재 진행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갈 때까지,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신앙의 여정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성직자, 수도자들부터 굳건한 믿음의 반석 위해 자신의 성소를 세워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모세와 같은 믿음, 다윗과 같은, 성 요셉과 같은, 성모 마리아와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참으로 대단한 성모님의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모님의 도움을 청합시다.

 

 지난해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던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지난 2월에 갑자기 사임하셨습니다. 교황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2000년 교회 역사에 있어서 스스로 사임한 적은 없었으니 이번 일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3월에는 콘클라베가 소집되었고 투표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저 멀리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의 교구장 추기경께서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언론도 예상하지 못했던 분이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 이름을 ‘프란치스코’라고 지었고 ‘교황’이라고 불리기보다는 ‘로마의 주교’로 불리거나 그냥 ‘프란치스코’로 불리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죄인의 한 사람’이라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와 인내를 믿고 속죄의 마음으로 교황직을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는 1990년 2월에 27년간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한 뒤 군중들에게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나는 여기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천한 종으로 서 있습니다. 여러분의 희생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내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깁니다.” 

 그 후 4년 뒤에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여러 색깔로 이뤄진 무지개 같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하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남아공에 다인종 무지개 국가를 건설해 놓고는 사흘 전에 9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별은 지고 새로운 인류의 별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우리가 참으로 본받아야 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조금 후에 오늘 종신서약 하시는 수녀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복되신 성모 마리아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본받아 정결과 순명과 가난의 생활을 받아들이고 영구히 살기를 원합니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철저하게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현 교황님은 이런 프란치스코 성인을 닮기 위해서 당신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하시고 지금까지 보여주신 말씀과 행동들이 글자 그대로 가난하고 소박하고 파격적이어서 교회 안팎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황님께서 이렇게 사시는 것은 우리들도 그렇게 살라고 본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최후만찬석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 난 뒤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고 성모님을 닮고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 교황님을 닮으려는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교황님이나 저나 여러 수녀님들이나 똑같이 ‘하느님의 일’을 하라고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에페 1,4)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은총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얼마 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사목자들이나 봉헌된 수도자들에게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게 될 때에 저는 먼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 열매 맺지 못하는 미혼 남자가 있구나.’ 또는 ‘미혼 여자가 있구나.’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닙니다.”

 이렇게 교황님께서는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에게 자신의 부르심의 목적에 맞게 잘 살라고 여러 번, 그리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지난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에는 아시시의 성글라라 수녀원을 방문하여 수녀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무 영적인 일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적인 것, 실재적인 것도 생각하라고 하시면서 ‘어머니가 되라’고, ‘생명을 주는 어머니가 되라’고 거듭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그저께 토요일 오후에는 구미에서 제5대리구 연극제가 있어서 갔었는데, ‘엄마의 바다’라는 연극을 봤습니다. 암에 걸린 엄마는 암보험을 해지하여 그 돈마저 아들을 위해 다 주고 갑니다.  

 

 수도생활을 ‘봉헌생활’이라고 합니다. ‘봉헌’이라는 말은 ‘자신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전 생애를 하느님께 오로지 바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 다섯 분의 수녀님들이 종신서약을 하십니다. 이 수녀님들에게 하느님께서 큰 은총 내려주시기를 우리 모두 간절히 기도 바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