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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방에서 쉬세요" (예수성탄대축일 밤미사 강론)
   2013/12/26  13:48

예수성탄대축일 밤미사 


2013. 12. 24 20:00 기계성당


 성탄 축하합니다. Merry Christmas! 우리가 그토록 고대했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밤 탄생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요즘 성탄절 분위기가 옛날 같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시골 공소에서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하였는데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형들하고 공소에 가서 크리스마스 츄리를 만들었고, 대나무와 문종이로 별을 만들어 빨간 물감 칠을 해서 종각 꼭대기에 올라가 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본당에 가면 성탄 예술제가 열리고 성당 마당에는 포장마차가 벌어지는 등 그야말로 잔치분위기였습니다. 

 옛날에는 ‘통금’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통금이 없는 날이 일 년에 딱 이틀인데 그 이틀 중에 하루가 바로 오늘밤입니다. 그래서 술꾼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잡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다들 즐거워했지요. 

 하여튼 ‘메리 크리스마스’는 ‘기쁜 성탄절’이라는 말인데 성탄절이 왜 기쁩니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와 죽음과 고통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의 구세주로 보내주셨기 때문에 기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천사가 밤새 양들을 지키는 목동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러 사람이 되어 오시는데 머물 곳이 없어서 어디로 오셨습니까? 

 오늘 복음에 보면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에 왔다가 해산할 때가 되어 아기를 낳았는데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합니다. 구유가 무엇입니까? 마구간에 있는 짐승들의 여물통입니다. 왜 거기에서 아기를 낳았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대로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루카 2,7) 

 지난 18일 저녁에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타에서 한국어 강좌 수료식과 성탄 예술제가 있어서 갔었습니다. 다문화 가족들이 간단한 연극을 했었는데 제목이 ‘빈 방 있습니까?’였습니다. 요셉 성인이 배부른 성모 마리아를 부축하며 빈 여관방을 찾아 헤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배가 부른데 청바지를 입었고 요셉은 수염을 길렀는데 치마를 입었었습니다. 왜 그런 복장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찾던 빈방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되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누구나 당신께 가까이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전에 어느 성당에서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에 어린이들이 연극을 하였습니다. 무거운 몸을 한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방을 찾아 이집 저집을 헤매고 있습니다. 어느 여관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로 방이 없다는 주인의 말에 힘없이 돌아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여관 집 주인이 다시 불러 세우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방이 있으니 내방에서 쉬세요.” 

 이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여관집 주인 역을 맡은 아이가 각본대로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원래 각본은 성경말씀대로 마리아와 요셉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었는데 그 어리석한 녀석이 “내방이 있으니 내방에서 쉬라”고 하는 바람에 연극을 다 망쳐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거운 몸을 한 마리아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던 그 아이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참으로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 주었던 것입니다.

 여관에 아무리 방이 없어도 주인 방은 있는 법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자기 것을 어려운 사람이나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의 사람들을 먹인 기적을 베풀었을 때, 누가 그 빵과 물고기를 내놓았는가? 어떤 소년이 내놓았습니다.

 이스라엘에 몇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때 엘리야 예언자가 어느 과부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뒤주에는 한줌의 밀가루 밖에 없었고, 마지막으로 먹고 죽을 생명과 같은 밀가루였지만 과부는 그 마지막 밀가루로 반죽하여 빵을 만들어 예언자를 대접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는 드디어 비가 내리고 가뭄이 그치게 되었다는 얘기가 성경에 나온다.

  남을 위해 자기 것을 내놓을 때 하느님은 더 큰 축복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그 여관 주인 역을 맡은 아이처럼, ‘내방이 있으니 내방에서 쉬세요.’ 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김호균 마르코 신부님이 이 기계성당의 주임신부로 온 지가 4년 4개월 된 것 같습니다. 4년 4개월 전에 공소였던 이곳을 본당으로 승격해주면 자기가 와서 사목해 보겠다고 해서 신부님이 이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 행복했지요? 그런데 신부님께서 설을 지내면 이 성당을 떠나셔야 합니다. 어디로 가시느냐 하면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로 선교를 또 자원해서 떠납니다. 더 가난하고 더 척박한 곳으로, 사랑이 더 필요한 곳으로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성탄의 정신입니다. 더 낮은 데로 임하신 하느님의 정신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17일에 77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교황청에서는 로마의 노숙자들을 초청하여 아침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그날 노숙자 세 사람을 당신 숙소에 초대하여 미사를 같이 봉헌하고 그들의 축하를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동북아 정세도 심상찮고,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국내 정치도 한 치의 양보도 타협도 없이 여와 야 간에, 노와 사 간에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만, 우리 모두가 주님 성탄의 신비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방을 하느님께 내 드립시다. 하느님께 자신의 처소를 내 준 사람에게 하느님은 영원한 처소를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방을 내주기 위해 배고팠던 사람도 있고, 감옥에 간 사람도 있고, 누명을 쓴 사람도 있으며 목숨을 바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방을 마련하고 계십니다.

  오늘 마구간에 태어나신 예수님께 우리 방을 내주도록 합시다.  그때 비로소 예수님은 내 안에 머무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처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이 기쁨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 특히 북한 동포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