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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낮은데로 임하신 하느님의 사랑 (예수성탄대축일 강론)
   2013/12/26  13:50

예수성탄대축일 


2013. 12. 25 계산성당 


 성탄 축하합니다. Merry Christmas! 

 오늘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이 나라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를 빼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지기를 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천국의 영광을 떠나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루카 2,12)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목동들에게 나타나 주님의 탄생을 전한 천사의 말대로, 이것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주 그리스도’(루카 2,11 참조)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안타깝게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셧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1,9-11)

 세상이 하느님 없이 생겨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당신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을 맞아들였다면 오늘날 세상이 이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올해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는 불안한 동북아의 정세 속에서 남북의 대치상태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합니다. 현재 북한의 체제가 어떤 돌발 상황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도 이념과 계층 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장기간의 철도노조 파업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정치대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건만, 서로 한 치도 물러설 줄 모르고 용서할 줄도 모르는 대립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다시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합니다.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요한 3,16)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그 참 뜻을 우리 모두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밤새 양떼를 지키는 목동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루카 2,8 참조)처럼 우리도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 교회 안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던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께서 지난 2월에 교회의 유익을 근심하신 끝에 용단을 내려 사임하셨습니다. 이는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베드로 좌에 오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고통 받는 이들을 깊이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주님을 본받아 당신 자신부터 가난하게 사실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격려하심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최근에 ‘복음의 기쁨’이라는 교황 권고를 발표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께서 지난 3월에 교황으로 선출된 후 지금까지 보여주셨던 언행들과 생각들을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앞으로 여러 해 동안 교회가 걸어가게 될 여정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자’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우리의 ‘진부한 도식’ 안에 가두지 말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목적이고 선교적인 회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시고 교회 조직들을 ‘더욱 선교 지향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성당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고’, 하느님을 찾는 이들이 ‘차갑게 닫혀있는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지난 17일에 77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교황청에서는 로마의 노숙자들을 초청하여 아침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그날 노숙자 세 사람을 당신 숙소에 초대하여 미사를 같이 봉헌하고 그들의 축하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교황님께서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사시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으로 인해 지금 교회 안에는 새로운 바람, 새로운 개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신비요 강생의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밤에는 제가 기계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기계성당은 4년 4개월 전에는 공소였는데 지금은 어엿한 본당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미사 중에는 15명의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받았고 미사 후에는 초중고 아이들의 성탄 예술제를 보면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본당신부인 김호균 마르코 신부님이 4년 6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내년 2월 초에는 기계본당 떠날 것입니다. 어디로 가느냐 하면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로 선교하러 갑니다. 파키스탄이 위험한 나라이기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느냐고 말렸지만 자신의 결심을 꺽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더 가난하고 더 척박한 곳에서, 사랑이 더 필요한 곳에서 펼치기 위해서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 성탄의 정신입니다. 더 낮은 데로 임하신 하느님의 정신인 것입니다. 미사를 마치고 음식을 먹고 있는데 신자 몇 사람들이 저한테 다가와서는 ‘주교님. 우리 신부님, 안 가면 안 돼요? 1년만 더 있으면 안 돼요?’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냥 미소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 얘기를 듣고 왜 그리 눈물이 났던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력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시골 마을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위엄을 드러내셔서 세상 사람들이 복종하게 하실 수 있으셨지만 오히려 십자가의 고통을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낮은 데로 임하신 하느님의 사랑, 강생의 본래 뜻을 알아듣기만 한다면 참 평화의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쁜 시기에, 우리 구원을 위해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신 주님께서 우리도 당신의 거룩한 가난에 한몫 들게 해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분열과 대립과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이 시대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의 증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