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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늘어만 가는 빈집 (빈집)
   2013/03/24  22:17

주: 오늘 밤 KBS 스페셜 '아파트의 역습'편에서 우리나라도 최근 빈집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는 걸 보고 수년 전에 쓴 글을 올려봅니다.^^*

 

 

                       늘어만 가는 빈집


  십자가를 안테나로!

  최근 일본 국토교통성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전국의 집 5,700만채 중 약 13%가 넘는 756만여채가 빈집이었고 올해는 약 800만채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는 해마다 성남시 분당구의 약 2배(약 20만채)규모의 빈집이 발생하는 것이며 특히 도쿄에만 약 11%인 75만채의 빈집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본의 급격한 빈집 증가는 우려할 만한 저출산과 자가주택 소유에 연연해 하지 않는 단독세대 증가까지 겹치면서 일어나는 기현상인데 향후 40년 후에는 빈집이 약 1,600만채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아무튼 우리나라도 최근 저출산과 주택수요감소로 빈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이런 빈집증가는 물론 가족해체, 고독사 등 비정상적인 사회현상에 따른 것이지만 방치되는 빈집은 곧 흉가가 되고 또 방화나 다른 범죄의 온상이 되는 만큼 관계당국은 이에 대한 대책마련과 또 복지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촉구하면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과 이에 대한 평론을 차례로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영화 ‘빈집’>


  청년 태석(재희 분)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을 돌며 문입구에 전단지를 붙인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단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빈집을 열고 들어가 얼마간을 살고 나온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태석은 어느 한 빈집에서 온몸에 멍투성이의 한 여자를 만난다. 남편의 집착과 소유욕 때문에 피폐해지고 망가진 채로 유령처럼 살아가는 여자 선화(이승연 분). 하지만 태석은 그녀를 남겨둔 채 서둘러 집을 빠져 나온다. 그러나 자신을 데려가 주길 바라는 것 같던 선화의 공허한 눈빛을 떨쳐버릴 수가 없던 태석은 다시 그녀의 빈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석은 남편의 강제적인 탐닉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선화를 보고야 만다. 참을 수 없는 광경 앞에 태석은 그만 손에 잡힌 3번 아이언 골프채를 휘둘러 선화를 구해 도망친다.


  태석이 그동안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함께 전단지를 붙이고 빈집을 찾아 들며 지내는 두 사람. 새로 들르는 집마다 마치 늘 살아왔던 것처럼 어질러진 빈집을 치우고 망가진 물건들을 고쳐놓는 태석을 보며 선화는 처음으로 자신이 비어있지 않은 집에 있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낀다. 태석 역시 조금씩 웃음을 찾아가는 선화를 보며 그녀에게 점점 끌리게 된다.


 그런 어느 날, 우연히 찾아 든 빈 집에서 싸늘히 버려진 노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 두 사람은 정성껏 장례를 치러주고 남겨진 빈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꿈꾼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이 갑자기 들이닥치고 두 사람은 그 아들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된다. 선화의 신원을 파악한 경찰은 태석에게 납치와 살인, 무단 가택침입이라는 혐의를 씌운다. 그리고 돈으로 형사와 깡패를 매수한 선화의 남편 앞에 처절히 무너지는 태석과 반항도 못하고 집으로 다시 끌려온 선화. 하지만 풀려난 태석은 어떻게든 선화에게 돌아가려 하고 선화 역시 태석을 찾아 그와 함께 한 추억인 깃든 빈집들을 찾아 나선다...


                      <김기덕 감독의 ‘빈집’ / 조혜정 교수>


  김기덕 감독은 대단히 논쟁적인 감독이다. 스스로의 생각과 표현을 너무나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때로는 몸서리치고 때로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데뷔작인 〈악어〉에서부터 여덟 번째 영화 〈해안선〉에 이르기까지 김기덕 영화는 자기파괴와 모멸과 부정의 이미지로 채워졌다. 자기 신체를 훼손하고 신체의 훼손보다 더 깊은 영혼의 상처로 절망하고 몸부림치는 ‘야생동물들’의 성난 눈초리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작품들이었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마리아〉(2003년)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년)을 거쳐 〈빈집〉(2004년)에 이르는 김기덕의 여정에 분노 대신 연민이, 자기파괴 대신 구원이 슬며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가학적이고 피학적 이미지가 중화되면서 이른바 ‘김기덕다운 날 것 그대로의 비릿한 싱싱함’이 엷어지거나 사라졌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 이들도 있고, 그의 변화를 세상과 불화한 한 아웃사이더가 비로소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고 보는 측도 있다. 어느 쪽으로 보든 김기덕의 변화는 시작되었다는 것이고, 의미 있는 것은 그가 구원에 대해 시선을 돌렸다는 것이다.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그의 죽음에 죄의식을 가지고 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는 한 여고생의 모습에 자신을 낮추고 던져 병들고 상처받은 이를 보살펴주던 ‘착한 사마리아 여인’을 포개어놓는가 하면(〈사마리아〉), 인생의 윤회와 업을 계절의 순환과 삶의 흐름에 접목시켜 인과응보와 연기(?起)의 화두를 꺼내든다(〈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두 작품은 그리스도교와 불교로 종교의 외피는 달리하지만 죄의식과 연민 그리고 구원이라는 종교적 보편성은 공유한다. 〈빈집〉 역시 앞의 두 작품에서의 연민과 구원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빈집〉은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속에 종종 빛나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빈집만 찾아다니는 청년(재희)이 있다. 이 청년은 빈집에 들어가 식사도 하고 잠도 자며 마치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지낸다. 그러나 이 청년이 도둑은 아니다. 오히려 어질러진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빨래도 하며 고장 난 장난감도 고쳐놓는다. 그러다 청년은 어떤 집에서 한 여자(이승연)를 만나게 된다. 빈집인 줄 알고 들어간 집에는 여자가 있다. 남편의 의심과 폭력과 집착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여자. 삶의 기쁨도 의욕도 상실한 채 그냥 정물처럼, 박제처럼 박혀있는 여자. 청년은 여느 빈집에서처럼 먹을 것을 찾아먹고 빨랫감을 찾아내어 빨래를 한다. 비로소 청년의 존재를 느끼는 여자 그리고 여자의 불행한 삶에 마음이 끌리는 청년. 여자는 청년을 따라 빈집 순례에 나선다.


  집은 누군가의 존재의 흔적이다. 그 곳에는 누군가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충만함과 황폐함이 있다. 〈빈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부재를 통해서 그들의 흔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여자와 청년은 비어있는 집에서 또 다른 흔적들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침입이 아니며 훼손도 아니다. 오히려 청소와 정리를 통하여 일종의 정화의식을 치르는 듯 비쳐진다.


  영화는 시종 침묵 속에 진행된다. 배우에게서 대사를 앗아간 이 영화는 오히려 그들의 눈빛을 통해 강렬하고 함축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이 기이한 침묵은 청년이 감옥에서 사라져 여자의 집으로 스며들 때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그는 그림자가 되어 또는 그 집의 공기가 되어 여자 옆에 머문다. 여자와 청년이 함께 올라선 체중계의 눈금이 영(0)을 가리키는 것은 두 사람을 영(靈)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이다.


  하나는 여자와 청년이 죽어 현실을 벗어나는 경우다. 청년은 감옥에서 사라지는 연습을 한다. 그러고는 사라져 여자의 집에 그림자가 되어 나타난다. 자신에게 위안을 준 청년이 감옥에 가고 다시 폭력적인 남편에게로 돌아왔을 때 그녀에게는 모든 자유와 희망이 사라진 것일 테고 그래서 그녀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체중계의 제로(0) 눈금은 두 인물의 육신이 소멸된 것을 의미한다.또 하나는 이 영화가 애초부터 집에 갇혀있는 여자의 판타지라는 측면이다. 남편의 구타와 집착으로 망가진 불행한 여자는 감옥과 같은 그 집에서 탈출하기를 꿈꾸고 자신을 집으로부터 데려나갈 누군가를 기다린다. 청년은 여자의 판타지 속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실체가 아니다. 실체가 아니므로 육신의 무게가 있을 수 없으며 다른 사람(남편)에게 보일 리도 없다.


  어느 쪽으로 보든 〈빈집〉은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고 다양하게 읽어낼 요소를 가지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놀라운 것은 기발한 상상력과 다양한 독해를 유발하는 지점이 도처에 있다는 점이다. 〈빈집〉은 감독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종교성을 기저에 깔고 있다. 불행한 여자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녀를 불행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하는 구원의 의식이 영화에 존재한다.


  불행한 여자가 감옥 같은 집에서 박제처럼, 식물처럼 살아가야 할 때 그녀가 간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이 집에서 탈출시켜 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옛 이스라엘 민족이 메시아를 기다리듯, 다윗이 야훼를 향하여 부르짖듯(시편 142`―`143) 그녀는 수없이 자신을 구원할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이다. 마침내 응답이 이루어진 것일까? 불행한 여자를 지켜보고 그녀를 가엾게 여긴 청년은 감옥 같은 집에서 여자를 데리고 나온다. 여자는 비로소 생기를 되찾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은 사람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간구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빈집을 순례하던 여자와 청년이 한 노인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외롭게 죽음을 맞는 노인을 지켜보며 그들은 정성스레 노인의 시신을 염한다. 죽음에 직면해서 외롭고 두려웠을 노인에 대한 연민 그리고 주검을 방기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에 그들은 노인의 사체를 정성으로 감싸게 되는 것이다. 연민은 사랑과 구원의 출발이다.

주: 조혜정교수는 영화평론가이며 수원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입니다. (출처: 사목지 2005년 1월호)


                    <말씀에 접지하기;  마태 11, 28-30>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http://cafe.daum.net/ds0y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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