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 속에 숨은 칼과 생명(부활 제3주일) |
2008/04/04 8:49 |
사랑 속에 숨은 칼과 생명
(부활 제3주일, 루카 24,13-35)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성경의 뜻을 풀이해주시고,
생전에 굶주린 사람들을 사랑하여 빵을 많게 하신 기적으로
빵을 쪼개 그들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의 동작을 보여주셨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돌아가신 나자렛의 예수님으로 알아보았다.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과 부활과 죄 용서가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의 뜻이라고 설명해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읽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시련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더욱 단련되고
완전한 인격이 되고(히브 4,14-16; 5,7-10),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실 수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뜻에 따라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고
그분을 배신한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메시아로 임명하셨다.
이처럼 하느님의 생명은
사랑 때문에 겪는 고통과 죽음 속에서 솟아오른다.
명예나 왕좌는 고통과 가시밭 속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신비가 미사 때 재현되고,
이 신비를 사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따를 수 있다.
우리가 부활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을 본받아 날마다 사랑의 고통을 달게 받는 것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풍요로운 인격으로 변한다.
얼마나 진지하게 사랑했는가가
내 존재의 의미를 결정한다.
영원히 남는 것은 사랑이다(1코린 13,13).
그러나 나의 작품, 재력, 업적, 지위는
내 존재의 의미가 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사랑처럼 나의 전인적인 관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의 지성이나 특기에서 나온
기능적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귀가 아무리 황금을 잔뜩 짊어진다 해도
황금으로 변하지 않고 나귀에 지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마음을 주지 않고는 못사는 것이 인생이다.
분명히 마음의 상처를 입을 것을 알고서도
마음을 주어야 살 수 있다.
앞으로 마실 독약인 마음의 상처를 미리 생각하고
마음을 주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 마음을 줄 대상이 없는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
사람이 사랑을 그만두는 날은
삶의 힘은 끝나는 날이다.
“가장 완성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좋건 나쁘건 가리는 일 없이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마호메트).
참고도서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200-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