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는가? |
2008/07/04 9:13 |
누가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는가?
마태오복음 10,17-22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청년이
어느 허름한 주막에 들려
국수 한 그릇을 주문했다.
돈은 없지만
허급지급 먹는 것을 본 주인 할머니는
또 한 그릇을 더 주었다.
그는 재빨리 먹고 도망쳤다.
할머니가 밖으로 나와
도망가는 그에게
“뛰지 마. 넘어져 다치지 않게.”
그는 “도둑놈 잡아라. 거기 서지 못해?” 하고
고함을 지를 줄 알았으나
뜻밖에 자기의 건강을 걱정해주시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뛰던 발에 힘이 쏙 빠져
골목길로 들어가서 대성통곡을 했단다.
종교인들은 이기심과 불의와 증오가 판을 치는 곳에서
이타심과 진리와 사랑을 실행하여
하느님이 참으로 살아 계시고,
내세가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수는
그 나라의 사회와 경제발전과 연결된다.
신앙인들은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책임의식이 있고, 약자들을 보호하며,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게 비추는 사명을 다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우울하게 만드는 종교는 그릇된 종교이다.
인간은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길 것이지,
강제로 섬겨서는 안 된다”(Kant).
이처럼 종교가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면
대중의 외면과 손가락질을 받고
집단이기주의자로 낙인이 찍힌다.
종교인들이 소외된 이들과 동고동락하지 않고
헌금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여
제 사업체를 확장하는 데 혈안이 된다면
종교 본연의 역할을 포기한
이기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인들이 물질적인 안정과
무사안일주의에 집착한다면
믿음을 질식사시키고 만다.
믿음은 척박한 광야의 시련 가운데서는
자라나지만
풍요로운 문명 속에서는
위태로워진다(호세 2,7-13; 예레 2,2).
오늘날 천주교는 물질만능주의와
안락한 현세생활에 대한 집착 때문에
박해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각자의 안락한 삶과 건강과 장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의 종교는 타락한 것이다.
“종교 안에 참된 기도가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그 종교가 참 생명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된다.
기도가 타락하면 종교도 타락한다”(M. Buber).
소외된 사람들에게 마음과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하느님을 증언할 수 있다.
우리는 선행을 하려고 신자가 되었다.
사람들이 우리의 선행을 보고
선행을 할 마음과 힘을 주신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하느님은 선행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따라
우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하시던지
영원히 불행하게 하실 것이다.
비신자들이 우리를 보고
“과연 신앙인이라서 우리와는 다르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말할까?
아니면,
“나는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당신네들만큼 잘 산다.
무얼 하려고 성당에 나가나?” 하고 말할까?
신간서적
박영식,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 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같은 저자,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나해)>
가톨릭신문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