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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잘난척하는 사람이다(연중 제22주일)
   2010/08/27  11:27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잘난척하는 사람이다.

 

루카복음 14,1.7-14

 

 

눈높이를 맞추어야

참된 만남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낮은 사람을,

가난해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을,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않은 사람은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눈높이를 낮추어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자기를 낮추고

상대방의 ‘키’만큼 되어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와 반대로,

자기를 표준으로 삼는 사람은

이웃이 자기를 위해 있다고 여기고

이웃을 부려먹으려 든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할머니는 너를 업어주고 달래주고

  함께 놀아주는데,

  너는 커서 할머니에게 뭐 해 줄래?”

 

손자는 할머니가 싫어하시는 음식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사드리겠다고 대답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면

할머니도 좋아 하신다고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자기를 표준으로 삼는 사람은

정신연령이 유아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라고 가르치셨다(루카 14.11).

이웃에게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도 겸손한 사람이 되어

상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교만한 사람은

끝자리로 쫓겨나는 수치와

하느님의 심판을 당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비하의 극치까지 내려가신 당신이

하느님과 동등한 주님으로 높여지셨듯이,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도

찬란히 빛나는 하느님의 품속으로

들어 높여진다고 이르셨다.

 

하느님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사랑을 저버리더라도

이기심을 채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관계가

주종관계인데도

하느님께 순종하려 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존재로

낮추어 버린다.

우리가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에서

통용되는 규정에 순종하지 않으면

가정과 회사와 교회가 해체되고 말 것이다.

또한 이웃을 만났을 때

이웃의 말을 들어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 사람은

대화할 능력이 없는 미성숙아이거나

열등의식이 강한 사람이라 하겠다.

 

내 자세를 낮추면

상대방이 높아지고,

상대방은 또 나를 더 높여준다.

한결같은 사람을 내 곁에 두기 위해

자꾸 내가 낮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마음을 계속 닦아

욕심을 버려야 한다.

조금이라도 위치가 올라가면

교만해지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잘난척하는 사람이라 한다.

자기가 너무나 초라해서

잘난 척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잘난 척하는 사람도 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

남에 대해 자주 섭섭해 하는 사람,

남이 하는 것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잘난척하는 사람이다.

 

하느님과 이웃을 드높이기 위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킨다.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산다"(톨스토이).

 

 

 

               신간서적

 

박영식,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 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

   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