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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고 싶은 사람과 꼴도 보기 싫은 사람(연중 제30주일)
   2010/10/22  22:18

보고 싶은 사람과 꼴도 보기 싫은 사람

 

루카복음 18,9-14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리는

하느님 대전에서 눈을 들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불쌍히 여겨주시기만 바랐다.

자신을 위해 주장하거나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고

죄인인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했다.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기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넓은 마음을 품어야만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자기 말을 하기보다

이웃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사람,

이웃에게 순서나 길을 양보하는 사람,

쓰레기를 먼저 줍는 사람은

어디서다 희망을 창조한다.

먼저 용서를 비는 사람,

먼저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

먼저 칭찬하는 사람은

약방의 감초처럼

어디서나 환영받고

남을 웃게 하고

자기도 웃게 된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만나고 싶은 사람이요

만나면 진지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이다.

또한 그는 만나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채워주는 사람이요

곁에 있지 않아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사람이다.

 

세리와는 반대로,

바리사이는 매주 두 번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봉헌해온

자기의 업적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에 와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말만 늘어놓았다.

그런 사람은 만나면 따로 노는 사람,

만나는 것이 즐겁지 않는 사람이요

독선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그는 달팽이처럼 자신 속에 갇혀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를 맺지 못한다.

 

나의 인생은

내가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습관적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우리의 삶을 결정한다.

그것은 가까운 인간관계보다

더 많은 영향을 우리에게 미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만큼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데

많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단 몇 분의 사고로도

우리의 뇌는 변한다.

하루 종일 사랑을 생각하면

박애주의자가 되고,

하루 종일 하느님을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하루 종일 학문을 생각하면

학자가 되고,

하루 종일 돈을 생각하면

물질만능주의자가 되고,

하루 종일 자신을 생각하면

자기중심주의자가 된다.

이처럼 주된 관심사가 자기 자신인지

혹은 하느님과 이웃과 공동체인지에 따라

인격과 신앙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

 

물과 햇살을 주고

대화를 해주어야

분재가 크듯이,

사람도 그러하다.

우리는 하느님과 이웃을 기다려주고

그리워하고

들어주고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다.

 

하루 종일 하느님과 이웃의 행복을 위해

애써야

하느님과 이웃도 하루 종일 우리의 행복을 위해

애써 주신다.

우리는 이웃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인가?

‘보기 싫은 사람’인가?

 

 

          신간서적

 

 

박영식, <말씀의 등불 I. 주일 복음 묵상․해설

   (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

   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

   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