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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 축일)
   2009/06/13  8:18

 

 

"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4)

 

마르코복음 14,12-16.22-26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욕을 먹는 사람,

  욕을 전하는 사람,

  그러나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설을 퍼부은 그 사람 자신이다”(Maxim Gorky).

 

법의 단죄보다 더 무거운 형벌은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자신의 인간성이다.

양심과 사랑을 무시하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독가스처럼 예외 없이

자신과 이웃의 생명을 파괴하고

신용할 수 없는 인간으로 만든다.

악인은 타인을 해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해친다(성 아우구스티누스).

원상복귀를 위해서는

속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죄를 속죄해야

그 독소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자기가 저지른 죄를

속죄할 수 없다.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영원히 죽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

고맙게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죄 값을

대신 치러주셨다.

예수님은 미사 때마다

당신의 속죄죽음을 재현하신다.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바치는

기도와 제사는 효력이 있다(2마카 12,40-45).

오니아스와 예레미야와 같은

죽은 이들이

산 이들을 위해

중개기도를 할 수 있다(2마카 15,11-16).

모든 성인은

하느님의 어린양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죄를 속죄하며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중개기도를 할 자격이 있다.

그분들의 속죄 덕분에

인류가 그나마 이 정도로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며

안전하게 살고 있다고

여길 수 있겠다.

아브라함은 의인 열 명이라도 있으면

죄악의 도시 소돔을

쓸어버리지 마시라고

하느님께 사정하지 않았던가?(창세 18,32)

 

우리가 속죄하는 뜻에서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힘입어

자신과 이웃과 이미 죽은 이들을 위해

속죄할 수 있다.

병자들이 세상의 죄를

대신 속죄하는 뜻에서

고통을 받으면,

그의 고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연결되어

속죄의 힘을 낸다.

그들을 존경하자.

 

남편은 아내의 죄를,

아내는 남편의 죄를,

부모는 자녀의 죄를,

자녀는 부모의 죄를

대신 속죄해야 하겠다.

부모님이 죽음을 다 준비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여겨지면

살아남은 자녀들이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여

부모님 대신 속죄해 드릴 수 있다.

술과 담배를 끊거나

좋아하는 음식을 덜 먹는 것도

속죄하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고통을 받는 것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자.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고통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에서 나오는

구원에 힘입어

죄와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이웃에게

자유를 베푸는 힘이 있다.

 

사람은 속죄의 고통을 겪음으로써

정화되고

강인해지고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힘을 얻으며

남을 행복하게 만든다.

 

 

                                 신간안내

 

박영식,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

    복음․마태오복음․루카복음․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09년

    판매처: 복현성당, 바오로딸, 계산서원,

                  성바오로서원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

    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위의 저자,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나해). 가톨릭신문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