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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목을 빼고 기다려 주는 사람 때문에 산다(설날)
   2013/02/12  10:19

목을 빼고 기다려 주는 사람 때문에 산다(설날)

루카복음 12,35-40

인생은 기다리던 사람이 돌아올 날을, 고대하던 일이 이루어질 날을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 길을 걸어 내 품속으로 돌아올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다. 들릴 듯 말 듯 발을 내딛는 소리에 더욱 초조하게 기다리게 된다. 빨리 오기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 실망과 체념을 배워간다. 물고기 몇 마리를 잡으려고 폭폭 찌는 뙤약볕 아래 왼 종일 호숫가에 앉아 미끼를 덥석 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낚시꾼처럼 끈기 있게 기다리면 대어가 덥석 미끼를 물고 내 품에 안긴다. 기다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낚시 대를 걷어들고 가버린다. 애쓰지 않고 행복을 기다리는 것은 나무로 만든 꽃에 나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산다는 것은 빨리 오기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 실망과 체념을 배워가는 것이다.

 

 

건강과 생명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온다. 병실 침대에 누워 링거액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리듯, 건강과 행복과 사랑은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링거는 아무리 천천히 내려가도 반드시 다 들어가서 건강을 되찾아준다. 이처럼 우리의 기다림도 링거와 같다. 링거액이 빨리 들어가도록 해 달라고 떼를 쓰거나 아예 링거를 중지해버리면 병고를 이겨낼 수 없듯이, 기다림을 그치고 싶다고 포기해버릴 수 없는 것이다. 포기해버리면 나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병고와 죽음밖에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마라. 하느님은 세상에 초연함이라는 속성을 부여했고, 그 때문에 세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잔인하다. 잔인한 세상 속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남들과 다른 점은 때를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B. Gracian, 지혜의 기술, 17).

 

 

차가운 겨울 창문에 이마를 대고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희망을 기다리는 것, 추운 겨울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 행운 등을 기다리는 것, 세월이 갈수록 기다림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밤이 깊어진다는 것은 새벽이 더 가까이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추위가 심해지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인생은 오랜 시간 병마와 사투를 벌려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일터로 나갈 날을,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전부 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중 한 부분이라도 실현되기를 기다린다. 꿈꾸는 일은 너무나 더디 온다. 빨리 오기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 실망과 체념을 배워간다. 기다리다 보면 기다리는 사람이 언젠가는 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도 성공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결국 온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말고는 더 기다릴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죽음 저 너머 영원한 사랑과 생명과 행복을 기다린다.

 

 

예수님은 내가 죽는 날 결정적으로 나를 찾아오신다. 당신을 구세주로 기다려 온 나에게 구원을, 영생과 영복을 주러 오신다. 당신을 기다리지 않은 사람에게는 심판을 집행하실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는 말씀과 7성사를 통해 나를 찾아오신다. 성경과 감실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바로 내 곁에 있는 이웃의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며 만나자고 하신다. 전화기로 나에게 말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해도 그가 하는 말이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나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듯, 예수님은 웃음과 눈물, 건강과 병고, 성공과 좌절,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을 겪고 있는 나에게 인생을 이야기하자고 기다리고 계신다. “진정한 축복은 흔히 고통, 상실, 좌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참고 기다리면, 머지않아 제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J. Addison, 1672-1719). 하루 24시간 말씀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이 늘 깨어 있는 사람이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양식인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면 내 둘레가 환하게 빛이 나고 내 둘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빛 속에서 살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을 마음에 품으려면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 피아노 건반이 낱낱이 소리를 내듯이, 늘 사람들 속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며 기다려 주는 것이 참되고 성숙한 사랑이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자기들을 기다리고 계시는 것을 보면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에 겨워한다.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이 기다려주는 것임을 배우고 자기들도 부모가 되면 자녀들을 기다려줄 줄 안다. 그뿐만 아니라 부부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이웃도 서로 기다려줘야 사랑과 우애와 인정을 가꿀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3초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다른 자동차를 3초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3초를 기다려주지 않아 3초도 더 못 살고 영원히 가는 수도 있다. 우리는 새치기 하는 사람을 3초만 양보해도 될 텐데, 그가 위급한 상황에서 그렇게 새치기를 할지도 모를 텐데. 3초만 다른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면 그 아이도 커서 내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평생을 문 앞에 서서 서성이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 그는 문을 밀지 않았다(프란츠 카프카). 닫힌 문을 열릴 때까지 오래 동안 기다리지 말고 옆에 다른 문이 있음을 발견하여라.

 

 

남들을 기다리게 하고 그들의 입에 감미로운 뒷맛을 남겨라.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되 완전히 해갈시키지는 마라. 기대를 전부 충족시키지 말고 기다리도록 하라. 기다림은 욕망을 더 키우는 효과가 있다.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기다림을 통해서 증폭되는 법이다. 포만감을 느끼도록 쾌락을 섭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혼자서 독식하려는 태도를 보이면 남들에게 멸시를 당한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유일한 길은 배고픈 상태로, 갈망하는 상태로 남겨 두는 것이다. 기다림을 부여함으로써 즐거움을 더욱 깊게 만들어라.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B. Gracian, 지혜의 기술, 255-256).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은 쉬려고 하면 멈춰있지 않고 한없이 도망간다. 그러나 열심히 일할 때 시간은 좀 더 기다려 준다.

 

 

 

 

또 기다리는 편지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서울의 예수>(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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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 다해) 가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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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 해설 ? 가톨릭출판사 2013년 개정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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