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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만과 겸손(연중 제22주일 다해)
   2007/08/30  10:30

오만과 겸손

(루카 14,1.7-14; 다해 연중 제22주일)


하루 종일 ‘나, 우리, 당신’이라는 말 중에서

‘나’라는 말을 제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거나

높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항상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든다.

이와 달리, ‘우리’라는 말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은

자기 개인보다 가정이나 공동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한 ‘당신’이라는 말을 제일 자주 쓰는 사람은

철저하게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처럼 주된 관심사가 자기 자신인지 혹은 공동체인지

혹은 상대방인지에 따라

인격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겠다.


자기중심주의는 하느님이 인류에게 내리신 심판 중에서

가장 참담한 벌이다.

이 벌은 불치병이나 죽음보다 더 가혹한 것이다.

자기중심주의자는 하느님과 이웃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이웃의 인간적 품위와 생명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하느님과 이웃도 좋아하거나 싫어해야 한다고 여긴다.

자기중심주의나 이기심은 사랑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이고,

이런 상태가 바로 지옥이다.

따라서 교만해서 독선을 부리거나 아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지옥의 형벌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에 집착하는 사람은 자기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친구나 형제자매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과만 사귀며

서로 잔치에 초대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관심 밖으로 밀어내버리거나

자기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는 집단이기주의자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예수님은 이해타산에 맞지 않는 사람들,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잔치에 초대해야

자기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

‘당신’이라는 말을 제일 자주 쓰는 사람만이

모든 인간적인 타산을 극복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하느님과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안다.

‘이해하다’라는 영어(under-stand)는 ‘밑에 서다’라는 뜻이다.

십자가 위에서 비하의 극치까지 내려가서

종이 되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우리 모두를

‘당신’으로 섬기셨다.

이처럼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만이

항상 윗자리를 양보하고

끝자리에 가 앉는 겸손한 사람이며

하느님과 이웃과 함께 살 수 있다.

진정한 사랑은 하느님과 이웃 위에 서서 군림하거나

그분과 이웃을 자기에게 묶어두지 않고

그 밑에 서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라 하겠다.

사랑을 위해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높여져서

그분의 품속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이처럼 겸손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다.


‘당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의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과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같은

비천한 사람들의 종이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이들이다.

 

“세상에는 빵 한 조각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마더 데레사)

 

하느님은 보답을 전혀 기대하지 않으면서

사랑에 굶주린 이들을 찾아가

시간과 정성과 애정을 쏟는 이들을

의인들의 반열에 들게 하여

영광스럽게 부활시키실 것이다.


참고도서

박영식, <루가 복음 해설 4. 루가 10,38-15,32. 새 본문 번역과 해설. 성경의 세계 7> 성바오로 2004년, 197.20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