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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영원한 모습은?(연중 제30주일)
   2007/10/25  13:48

나의 영원한 모습은?(루카 18,9-14)

 

우리는 육체적인 죽음으로 없어지지 않고

이 지구를 떠나더라도

하느님의 왕국이나 연옥이나 지옥으로 간다.

지옥으로 가면

우리의 실존은 파멸이지만

천국이나 연옥으로 가면

살아 남는다.

7백년 뒤, 7만년 뒤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오늘 내 모습이 곧 영원히 보존될 모습이다.

 

“영원이란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미 그 속에 있다.

  오로지 현재 속에서만 인간은 영원을 알 수 있다”

   (괴테).

 

당신의 인생은

당신이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하루 종일 사랑을 생각하면 박애주의자가 되고,

하루 종일 하느님을 생각하면 성인이 되고,

하루 종일 학문을 생각하면 학자가 되고,

하루 종일 돈을 생각하면 황금만능주의자가 되고,

하루 종일 자신을 생각하면 자기중심주의자가 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는

경건한 유다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매주 두 번의 금식(월요일과 목요일)과

모든 소득의 십일조 봉헌이라는

(레위 27,39-32; 민수 18,21--24; 신명 14,22027)

자기의 업적에 도취되어

의로운 사람으로 자처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에 와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만 생각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킨 것이 하느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기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임을 시인해야 한다.

나아가서 목숨까지 바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의 계명을 잘 지켰다 하더라도

쓸모없는 종이라고 겸손하게 시인해야 한다.

하느님이 사랑할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의 계명을 충분히 지키지 않은 데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없고

당신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 바리사이를 내치셨다.

바리사이의 이러한 모습은 루카복음이 읽혀지는 곳마다

세상종말까지 남아 있는 모습이다.


바리사이와는 반대로,

세리는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경멸의 대상이었다.

세리는 하느님의 성전에서 자기가 죄인이기 때문에

하느님 가까이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여겨

눈을 내리뜨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 주십사고

하느님께 빌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해주셨다.

죄의식을 가지는 사람만

하느님을 만나고 구원받을 수 있다.

죄의식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없다.

하느님의 자비를 받은 세리의 모습은

영원히 우리에게 본보기로 남아 있다. 

 

하루는 영원의 축소판이다.

오늘 이 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자기의 온 인생을 지배한다.

부부가 서로 아침인사를 하는 모습,

날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모습,

날마다 서로 칭찬하는 모습,

시장에 갔을 때

자기 것보다 가족들의 것을 먼저 사려는 모습,

자기 말을 하기보다 이웃의 말을 먼저 들어주는 모습,

순서나 길을 양보하는 모습,

쓰레기를 먼저 줍는 모습,

용서를 비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

지금 이러한 모습을 간직하면

하느님이 빙그레 웃으시고,

나도 영원히 웃으며 살게 된다.

나의 영원한 모습은 지금 이 순간 나의 모습에 달려 있다.

이웃이 지금 나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평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