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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에 도움을 준다(모든 민족의 복음화)
   2007/10/18  17:1

사랑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에 도움을 준다

(마태 28,16-20)

 

어느 며느리는 반신불수가 되신 시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간호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시중드는 일 말고

독서를 하거나 병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하루는 시간이 무료해서 건강검진을 받아 보았다.

유방암 초기였다.

이 며느리는

 

“아버님이 내 병을 일찍 알게 해주어 나를 살려주셨다”

하고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위의 며느리는

다른 누군가의 길을 밝혀 주기 위해 등불을 켜면

결국 자신의 길도 밝히는 것이 됨을 체험했다.

사랑에는 사람을 죽음에서 살리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사랑은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에 도움을 준다.

우리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사랑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아름다운 보상이다.

메아리는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자기에게 되돌아오듯,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는 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사랑이나 증오는 부메랑처럼

그것을 마음속에 품는 이에게 다시 돌아간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도

자신이 먼저 복음의 빛으로

작은 빛이 된다.

우리가 복음을 선포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사시기 때문에

그분을 닮아 이타적인 인격을 갖추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는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전교하지 않는 사람은 빛이 되기를 포기하고

비신자들의 구원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기중심주의에 빠지고 만다.

 

가정과 공동체와 지역사회와 온 세상에

복음의 빛을 밝히자.

우리는 함께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되거나

함께 파멸의 수렁으로 떨어진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기뻐하면

가족 전체가 기뻐하게 되고,

남의 자식이 건전하게 자라야

내 자식도 건전하게 자라듯,

자기 혼자서 구원받거나 심판받는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인류는 운명의 연대성 안에서 산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의 경기가 침체기에 빠지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영향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남의 구원을 위해 애를 써야

자기의 구원도 희망할 수 있다.

전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다.

 

복음선포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가정에 사랑이 넘쳐흐르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는 자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기본 자질을 갖추게 된다.

사랑과 행복과 기쁨의 샘이신 하느님은

함께 기도하는 가정에 임하신다.

 

“개인적인 기도는 여기저기 흩어진 밀짚과도 같다.

  만일 당신이 그것에 불을 붙인다면

  조그마한 불꽃이 일어날 것이지만

  밀짚을 다발로 모아서 불을 붙인다면

  하늘로 치솟는 기둥 같은 큰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공동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다”

   (성 요한 비안네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