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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만이 영생을 얻는다(연중 제26주일)
   2007/09/27  8:42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만이 영생을 얻는다.”

(루카복음 16,19-31; 연중 제26주일)


많은 사람은 자기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에서

가족들과 자신을 위해서는 재물을 아낌없이 쓰지만

불우한 이웃에게는 인색한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 뵙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

자기만을 위해 돈을 쓰면 지옥으로 간다.


부자는 왕들처럼 자주색 옷을 겉옷으로,

곱고 부드러운 아마포 옷을 속옷으로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즐기며

달콤한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부자와는 반대로,

종기투성이의 거지 라자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물 찌꺼기라도 얻어먹으려고

부자 집 대문 앞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부자를 지옥으로 보내

영원히 벌받게 하고,

가난한 라자로는 천국에서 성조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하셨다.


부자는 불타는 지옥에서

하느님의 왕국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자기 혀를 적실 물 한 모금을 간청했다.

부자는 돈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굶주린 라자로를 본척만척했기 때문에

물 한 방울도 얻지 못한다.

그 부자는 부자의 가장 큰 행복이

자선을 할 수 있다는 것임을 무시했다. 


부자는 자기의 다섯 형제들이 자기처럼

지옥으로 오지 않도록 라자로를 이승으로 보내

그들을 회개하게 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죽은 이의 출현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회개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부자의 간청을 거절했다.

부자의 다섯 형제는

하느님이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가르치신 대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된다는 것이다(신명 14,28-29;

이사 3,14-15; 5,7-8; 예레 5,26 -28; 에제 18,12-18; 아모 2,6-

8; 미카 2,1-2).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죽은 이의 기적적인 소생을 목격한다 하더라도

회개하지 않는다.

돌같이 굳은 마음은 기적을 보아도 풀리지 않고

죽은 이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그분을 향해 마음을 열고

일상사에서 그분의 뜻을 찾아낼 수 있다.

하느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분의 말씀은 들린다.

말씀을 들어야만 하느님의 신비에 스며들고

저승이 어떠한 곳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그분을 떠났기 때문에

그분이 일으키시는 기적을 보아도

그 뜻을 깨달을 수 없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는 이유는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재물의 노예가 되어

그분의 말씀에 무디어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도 현세생활에 집착한 나머지

하느님의 말씀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부자처럼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네가 건강할 때 베푸는 자선은 금이고,

  앓을 때 베푸는 것은 은이며,

  죽은 뒤에 베푸는 것은 납이다”

  (유대인들의 격언, Nathan Straus).

 

자기 시간을 하느님께 바치고

자기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뿌리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상인은 없다.


                       참고도서

박영식, <루가 복음 해설 5. 루가 16,1-21,38.

              새 본문 번역과 해설. 성경의 세계 신약 8>

               성바오로 2005, 4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