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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연중 제32주일)
   2007/11/09  16:33

사랑의 영원성과 영원한 생명(루카 20,27.34-38)

 

 

친구란

내가 산꼭대기에 왔을 때는

같이 노래하고

내가 골짜기를 헤맬 때는

내 슬픔과 고통을 자기 등에 짊어지고

나와 함께 걷는 사람이다.

 

"친구는 기쁨을 배로 해주고

  슬픔은 반으로 줄여준다"

  (키케로).

 

우정은 생명과 행복을 보장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우정이 없는 인생은 끝없는 사막과 같고

죽음과 불행으로 점철된다.

 

“진정한 우정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피타고라스).

 

지금 우정관계를 맺고 있으면

그것이 곧 천국이요 영원히 기쁘게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한 사두가이들에게

죽은 이들이 부활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느님이 우정관계에 성실하여

당신의 친구들을 살리신다고 가르치셨다.

하느님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당신을

오래 전에 죽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제시하셨다(탈출 3,6)고 말씀하셨다.

이 성조들과 계약을 맺고 구원을 약속하신 하느님은

약속을 지켜 그들을 부활시키신다는 뜻이다.

성조들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구원약속은 무의미하고

하느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지도 못하며

생명의 샘이실 수 없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그분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루가 20,38).

 

하느님과 우정관계를 보존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성조들은 사람의 눈에는 죽은 것 같지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친구이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이다.

 

성경학자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기원전 165년경 다니엘서(12,2)에

처음 나온다고 여긴다.

이 구절에서는 부활이

이 지상의 삶에 대한 보상으로 서술되었다. 그 다음 124년경 마카베오 하권(7,9- 14)에서는

율법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순교한 사람들이

‘몸의 부활’이라는 은혜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기원전 50년경 지혜서(1,15; 3,4; 5,1-5; 8,13)에는

의인들의 불멸을 예언했다.

드디어 약 2천년 전

하느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써

이 세상에 당신의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셨다.

 

우리는 세례 때

하느님과 우정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미사 때마다 우정을 깊이 있게 가꾼다.

사랑의 영원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분께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변질되더라도

나만은 결코 변하지 않고

사랑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이미 영원을 살고 있다고 하겠다.

사랑은 생명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시간이

생명을 빼앗기 시작하지만

사랑하는 시간은 곧 영원한 생명이다.

 

“친구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엘버트 하버드).

 

내 마음 속에

친구뿐만 아니라 원수를 향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