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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바른 손님대우(연중 제31주일)
   2007/11/01  21:55

올바른 손님대우(루카 19,1-10)


독일 뮨헨의 많은 시민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올림픽 경기장에 모였다.

독일 수상과 각료들, 야당 정치지도자들이 모여

교황님을 성심성의껏 맞이했다.

교황님은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터키인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달라고 호소하셨다.

독일 여야 정치인들은 교황님의 방문에 보답하는 뜻으로

그분의 뜻대로 할 것이라고

그 이튿날 신문을 통해 발표했다.

손님대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리코를 지나가시는 길에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님을 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팔레스티나를 식민지로 다스린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위임받아

부하 세리들을 고용한 세관장이었다.

세관장들은 부하 세리들로부터 상납금을 받아

부정축재를 하곤 했다.

자캐오도 부정축재로 많은 재산을 모은 것 같다.

그는 키가 너무 작아

군중에 가려지신 예수님을 뵐 수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가서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님을 뵈려고 했다.

예수님은 자캐오의 믿음과 열성을 눈여겨보고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이르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죄인으로 간주되어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자캐오를

구원하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기셨다.

자캐오는 예수님의 얼굴만이라도 뵐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인데,

뜻밖에 그분을 자기 집에 모시는 영광을 얻었다.

 

자캐오는 예수님의 방문에 대한 보답으로

자기 재산의 절반을 희사하고

혹시 자기가 남을 속여 돈을 모은 적이 있다면

네 곱절로 보상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

자기 재물을 선용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예수 메시아께서는 죄인인 자캐오에게 사랑을 베풀고

죄를 용서해주며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가족들도 구원해주셨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밭을 판 돈을 사도들에게 바친

바르나바(사도 4,36-37)와

바오로 사도와 그의 동료들을 자기 집으로 맞아

융숭하게 손님대접을 한 리디아 자매의 본보기이다

(사도 16,15.40).


예수님을 우리 마음과 우리 가정에 모실 때

무슨 선물을 드리는가?

자캐오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기 시간과 돈과 지식을 나누려는 마음,

하느님과 남편과 아내와 부모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마음이 좋은 선물이라 하겠다.

예수님은 최후심판 때

 

“너희는 내가 나그네였을 때 따뜻이 맞아들였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34-35.37.40) 하시며

하느님의 왕국으로 부르신다.

 

예수님이 내 마음 속에, 내 가정에 오실 때

선물을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선물을 달라고 보채거나

마음에 드는 선물을 주지 않으시면

앞으로 계속 죄인으로 살겠다고 공갈협박하지 않는가?

어린 초등학생에게 어머니가 주신 돈을 떼먹지 말고

꼭 헌금하라고 말했더니,

 

“하느님은 부자인데

  왜 가난한 나에게 자꾸 돈을 달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렇지 않는가?

 

제 집에 있을 때 손님을 맞아들일 줄 모르면

밖에 나갔을 때

자기를 환대해 줄 사람이 적음을 알게 된다.

손님에게 자기 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손님을 피로하게 만든다.

님대우는 그의 자기자랑을 들어주는 것이다.

자기를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부자이다.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부자는 천국의 복을 이미 이승에서 누리지만,

가난한 사람은 지옥의 형벌을 이미 이승에서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