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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 아니오"(대림 제4주일)
   2008/12/19  7:36

“예, 아니오”

 

루카복음 1,26-38

 

우리는 결혼을 할 때,

우정을 맺을 때,

취직을 할 때,

성품성사를 받거나 종신서원을 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하느님이나 사람들과

‘예’라고 약속하며 살아간다.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결단을 뜻하는

‘예’라는 말 대신에

‘아니오’라는 말을 듣거나

이 말을 되풀이하는 사람의 생명은

고갈되고 사라지고 만다.

부부는 서로 ‘예’라고 하며 맺은 결합을 통해

아기라는 새 생명체를 낳는다.

부모가 아기의 존재를 인정하기에

아기가 이 세상에 올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태어난 아기가

부모와 많은 사람들에게 ‘예’라는 인정을 받아야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만일 부모가 처음에는 ‘예’라고 했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니오’라고 했다면

그 아기는 아예 빛을 보지 못했거나

일찍 이 세상을 떠나 가버렸을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셨을 때

마리아가 내린 믿음의 결단인

‘예’가 필요했다.

마리아의 동정잉태는

믿음의 결단으로 이루어졌다.

 

“행복하십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친척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믿음이

자연적 임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적적 잉태,

즉 동정잉태에 대한 것이라고 보고

그의 믿음을 칭송했다.

자연적 임신인 경우에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 없다.

 

천사는

어떻게 동정잉태가 가능한지 묻는

마리아를 이해시키려고

친척 엘리사벳이

기적적으로 임신하게 된 경우를 제시했다.

임신할 수 없는 그가

늙은 나이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배려로

임신한 지 여섯째 달이 되었다는 것은

천사의 말이 옳음을 입증한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엘리사벳의 불임처럼

아기를 낳는 데 장애물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를,

먼지에서 인간을 지어내신 하느님은

엘리사벳의 경우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대한 동정잉태 기적을 이루실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이러한 권능을 믿고서

그분의 말씀에 조건 없이 순종하고

그분이 주신 사명을 이행할 결심을 표명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느님은 당신의 구원계획에 순종하도록

마리아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마리아가 내린 믿음의 결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하느님 아들의 어머니가 되는 데는

하느님의 은총만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도 중요한 몫을 했던 것이다.

 

아기 예수님은 마리아의 결단을 통해

마리아의 모태에 잉태되고

전 인류를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해주셨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이

성령의 힘으로 거처하시는 신전이 되었다.

 

우리는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아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 마음과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에

모셔야 하겠다.

세례 때 하느님께 말씀드린

‘예’라는 믿음의 결심을

날마다 되풀이하며

어떠한 시련이나 세속의 유혹 앞에서도

결코 ‘아니오’라고 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하겠다.

믿음은

하느님께 다 자란 나무를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작은 씨앗을 하나 받아

평생을 두고 큰 나무로 키우는 것과 같다.

성모님의 모태에 잉태되신 예수님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이들 마음속에 잉태되신다.

 

“그러나 사는 이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내 안에서 살고 계시는 분은

  오히려 그리스도이십니다”(갈라 2,20).

 

우리는 자신이 작아지고

그리스도를 커지시게 하여

그분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 하겠다.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하는 사람은

이웃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끝까지 사랑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이웃이 원하는 곳에,

이웃이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준다.

그러나 처음에는 서로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서도

나중에는 이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면

신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은 인격관계를 맺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이들을 외롭게 만들고 만다.

신용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많이 말하는 사람은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인 반면,

‘아니오’ 하는 사람은

능력이 한정된 사람이다(법상 스님).

‘예’라고 하는 마음은

모든 일을 밝게 만들어내는 반면,

‘아니오’하는 사람은

모든 일을 어둡게 한다.

'예'라고 하는 마음속에

구세주께서 임하신다.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나해).

    가톨릭신문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

   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