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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처럼 위대한 존재(주님의 세례 축일)
   2009/01/09  9:15

물처럼 위대한 존재

 

마르코복음 1,7-11

 

세상과 관계를 끊고 싶을 때가 있다.

온갖 비리와 권모술수로 얼룩진

세상을 떠나가고 싶다.

사랑, 가족, 우정이 무거운 짐이 될 때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산으로 올라가고 싶다.

나는 세상을 잊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는데

물은 산에서 세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슬픈 마음이 든다.

 

"물아, 왜 저 혼탁한 세상으로 흘러가니?"

 

세상이 좋아서 세상으로 내려가는 물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세상에는 자기가 채워야할

빈자리가 있단다.

 

자꾸 높은 데로 올라가려 애쓰는

인간과는 반대로,

물은 자신을 낮추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겸손의 덕을 가르쳐 준다.

물은 낮은 데로 내려가기 때문에

점점 커진다.

실개천이 자꾸 낮은 데로 흘러가서

큰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망망대해를 이룬다.

이처럼 바다와 강은

모든 산골짜기의 물을 다 받는다.

그들이 제일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제일 낮은 자리와

뒷자리에 앉으라는 가르침이다(노자, '도덕경').

 

 

피조물을 지어내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물처럼 자신을 비워

기구한 인간의 운명 속으로 내려오셨다.

증오와 폭력과 불의와 살인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역사를

추악하다 하지 않고

그 속에서 하실 일이 있다고

물처럼 내려오셨다.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

하느님이 아들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약 30년 동안 무명인사로 숨어 계시다가

우리와 운명을 같이하러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다.

죄와 죽음으로 운명지어진

사람들 중 하나로 자처하여

겸손하게 세례자 요한 앞에

고개를 숙이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길이 다 끊어진 것 같은

우리의 인생행로를 함께 가며

우리와 동고동락하고

생사를 같이하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닫힌 하늘을 열고

성령의 힘으로 이 세상에 임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베풀고 계신다.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이 지상의 삶 저 너머 하늘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믿음을 가르쳐주셨다.

 

하느님이 하늘을 열고

이 세상으로 내려오셨기 때문에

정녕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임을 깨달았다.

하늘이 열렸기 때문에

우리의 고향이 하늘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세례 축일을 지내며

열린 하늘을 우러러보고

행복에 겨워하는 것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것이다.

우리와 이 세상에 대화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은

당신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든지

배척하든지

양자택일하라고 재촉하신다.

 

물처럼 이 세상이 더럽고 악하다고

피하지 말고

그 한가운데에 서서

더럽고 악한 것을 몰아내려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야 하겠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만이

혼탁한 이 세상을

물처럼 깨끗하게 할 수 있다.

이웃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바지런한 사람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

우리의 운명을 떠맡으신

예수님의 제자이다.

먹고 살기 힘든 생의 한가운데서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사람은

하느님이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사랑이 많으신 분임을

온 세상에 증언하는 사람이다.

남이 마셔야 하는

쓰디쓴 술잔을

대신 마셔 주자.

행복의 지수를 높이기 위해

하느님과 가족과 친구와 자기에게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자.

그것이 내 자신을 진지하게 사는 것이다.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나해).

    가톨릭신문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

    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