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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을 주는 사람(주님 공현 대축일)
   2009/01/02  8:16

당신은 희망을 주는 사람인가?

 

미태오복음 2,1-12

 

 

“동방 박사들이 별을 봤다는 말은

성경이 없는 이방인들이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계시와

이 탄생을 예언하는 영을 받았다는 뜻인 것 같다.

이 영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이

몸소 사람이 되어

사람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영이다.

이 영을 받아야만

메시아를 믿고 따를 수 있다.

 

동방 박사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알지 못한 이교도들이지만

피조물 안에 내재한

하느님 구원의 뜻을 파악한 것 같다.

하느님은 당신의 보이지 않는 권능과 본성을

피조물 안에 새겨두셨기 때문에

우리는 피조물 안에 새겨진 창조주의 권능을

지적이고 정신적인 능력으로

인정할 수 있다(로마 1,19-20; 2,14-15).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 이루어낸

이웃의 장점을 찾아내는 사람은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대인관계를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

피조물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가 보이고

현존하는 곳이며,

그분을 알려주는

도구 역할을 한다(사도 14,15- 17 참조).

구약성경도 창조주 하느님은 피조물 안에

현존하신다고 가르쳤다(시편 8,4; 욥기 12,7-9).

이처럼 동방 박사들도

하느님과 그분의 메시아를

알 수 있었다고 여길 수 있겠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는 날까지

무엇인가를 희망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어떤 계획이 성취되기를 기다린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건강, 성공,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서

분투하고 발버둥친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이를 추구하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희망은 인간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도 없다”(헬렌켈러).

 

이 세상의 모든 진보는 희망 때문이다.

나라가 망해도

내가 망하지 않으면

나라도 희망이 있다.

 

 

지금까지 이미 꽤 많은 것을

싸워 얻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최종적 성취에 다다르지 못했다.

우리는 다시 계속 기다린다.

우리의 희망이

금방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 말고는

더 기다릴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생의 최종 의미를 찾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지속하는 사랑과

생명과 행복을 찾고 있다.

 

동방에서 메시아를 만나러 온 세 박사는

인생의 최종적 뜻을 찾아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간 사람,

결국 예수 메시아를 만난 이들이다.

 

인생은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를

합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절실하게 희망해 왔는가를

합한 것이다.

내 존재가 이웃에게

성공, 행복과 건강의 비법이 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희망이요 꿈이다.

잘 웃는 친구는 희망을,

잘 웃는 아내는 행복을 가져다준다.

사람은 봄에 피는 꽃처럼 희망을 품게 한다.

 

“사람은 메마른 폐허나 오막살이 집일지라도

  싱그러운 향내를 풍기게 한다”(플로베르).

 

사람이 희망이다.

부모가 아이들이 잘 할 때

칭찬해주고 기뻐해 주어야

아이들이 집념과 의욕과 희망을 품게 된다.

어른들의 희망도

장점들을 찾아내어

서로 인정해주어야 생길 수 있다.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해설(나해).

   가톨릭신문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

   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위의 저자,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