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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생의 길은 십계명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는 것이다(사순 제4주일)
   2010/03/12  8:42

영생의 길은 십계명이 아니라

                       하느님을 닮는 것이다

 

 

루카복음 15,11-32

 

 

루카복음 15,11-32에 나오는

아버지와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인품을

이렇게 비교해볼 수 있다.

아버지는 자기의 뜻에 순종한 맏아들을

사랑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뜻을 무시한 작은아들을

괘씸하게 여겨

내치지 않고

무조건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작은아들이 회개하기 전에도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고 있었던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서

뜨겁게 입을 맞추었다.

그를 용서하고

기꺼이 자기 아들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탕아에게는 뜻밖의 사랑이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동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하십니다”(로마 5,8).

 

이처럼 하느님은

작은아들이

당신의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그를 사랑하셨다(아가패).

하느님의 사고방식은

죄인의 죄상을 파헤쳐내고

그의 죄상을 인정하게 하며

그의 입을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결함이 많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받는 사람들을 기피하지만,

하느님은 이런 인간적 감정과는 달리,

죄인들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시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한없으신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기를 거절했다.

큰아들은 남이 잘못되면

기쁨을 느끼고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픈 사람과 같다.

큰아들은 원칙에 사로잡혀

잘못한 자기 동생에게 자비롭지 못하다.

큰아들이 생각한 아버지는

원리원칙에 매이는 존재이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아버지와 의무감에 좌우되는

법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을 따름이다.

이 큰아들 같은 신자들은

하느님의 은혜로

선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선행이 자기의 공로라고 주장한다.

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예수님을 닮아야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여기지 않고

십계명만 지키면

구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신자와 같다.

예수님을 닮은 점들과

닮지 않은 점들을 찾아내어 기록해보자.

 

작은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아버지의 자비와 관용을 믿고

비천한 날품팔이꾼으로라도

받아달라고 애걸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비를 믿고

회개하여

아들의 권리와 혜택을 회복했다.

 

우리는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닮지 않으면

그분의 자녀라 할 수 없다.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III. 주일 복음 묵상․

    해설(다해). 가톨릭신문사 2월 18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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