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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다(예수 부활 대축일)
   2010/04/02  21:46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다.

 

요한복음 20,1-9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일 새벽

아직 어두울 때에

혼자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달려가서 보고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와 함께

마리아 막달레나의 보고를 듣고 걱정하며

무덤으로 달려왔다.

 

이 제자는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먼저 무덤에 다다랐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드로보다 더 빨리 무덤에 다다랐다.

그는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간 뒤

덤 안으로 들어가

아마포만 보고도

그 뜻을 깨닫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

 

이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듣지도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지도 않고

빈 무덤만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예수님과 가장 친밀했기 때문에

그분의 부활을

제일 먼저 믿고 따를 수 있었다.

 

이처럼 익명의 그 제자는

예수님을 모범적으로 믿고 따르는

이상적인 제자이다.

성경학자들은 그 제자가

예수님이 한나스에게 끌려가셨을 때

시몬 베드로를 이 대사제 관저 안뜰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이라고 여긴다(요한 18,15-18).

그 제자는 대사제와 아는 사이였던 것 같다.

 

이 익명의 제자는

최후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배신자가 누구인지

여쭈어보라고

그 제자에게 말했다(요한 13,21- 26).

그 제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신 제자로서

배신자 베드로 사도와는 달리,

그분을 배신하지 않고

예수님이 체포되셨을 때에도

그분 곁에,

또 그분의 십자가 가까이에

서 있었다(요한 19,25 -27).

 

예수님이 사랑하신 그 제자는

열두 제자 중 하나는 아니고

최고의회 의원으로서

비밀리에 예수께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니코데모 같은 인물이었을 것 같다(R.E. Brown).

 

또 베드로와는 달리,

그 익명의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물고기를 기적적으로 많이 잡게 하신 것을 보고

호숫가에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 뵈었다(요한 21,7).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웃의 성격, 가치관, 사고방식, 사상이

무엇인지 알고

이웃의 독자성, 개성, 특성,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의 모든 면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제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다.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Tolstoi).

 

“사랑은 지식의 어머니다”(L. da Vinci).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신비를 부분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도록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믿을 수 있다.

이 사랑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는 힘이다.

사랑은 영원히 존속하고

영생을 낳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그 익명의 제자는

그분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분을 닮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깊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마침내 언젠가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이 된다”(Helen Keller).

 

그래서 그 제자는 빈 무덤만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따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태어난 것은

바로 이 사랑에서이고,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멸망하고 말 것이다(Goethe).

 

“사람들은 사랑에 의해 살고 있다.

  자기에 대한 사랑은

  죽음의 시작인 반면,

  하느님과 만민에 대한 사랑은

  생명의 시작이다”(Tolstoi).

 

“예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III. 주일 복음 묵상․

   해설(다해). 가톨릭신문사 2월 18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