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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을 거절하는 것은 영적인 자살행위이다(부활 제3주일)
   2010/04/17  9:11

사랑의 영원성: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와 헌신

 

 

요한복음 21,1-14

 

 

제자들은

부활하여 갈릴래아 호숫가에 서 계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식별하지 못했다.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의 몸은

이 지상의 실존방법과는 다른 차원에 속하고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영적인 몸이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이르셨다.

과연 물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배로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나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물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게 하셨다.

당신이 직접

빵과 물고기를 잡수시지는 않아도

아침상을 마련하여

제자들과 친교를 나누셨다.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고

  물고기도 그렇게 주셨다”(요한 21,13).

 

이 말씀에서 성체성사가 떠오른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여

빵과 물고기를 주신 것은

그들과 지상에서 함께 사신 것을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하신다는 뜻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활생명을 전해 받는 방법은 성체성사이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 안에 실제로 현존하심으로써

교회 안에서 계속 살아 계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신다.

 

영원한 생명은 천상에서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영성체를 통해

그분을 닮기 시작한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지기 시작했다.

영성체 때

시간이 멈추고

우리는 영원 속으로 들어간다.

천주성자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썩어 없어질 우리 몸속에 들어오심으로써

영원이 시간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원이란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를 사랑하여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사랑만이 영원을 산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어느 곳에서든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마음속에 머무르신다”

  (L. Tolstoi).

 

영원 속에 살기 위해서는 사랑을 보존해야 한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미 영원을 산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관심과 배려와 헌신만이

사랑의 영원성을 보존해준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음을

매 순간 기억하면

이미 영생을 누리기 시작한다.

 

“하느님의 인식으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기까지는

  얼마나 먼 것인가?”(B. Pascal).

 

그래서 영생을 고이 간직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읽고

미사에 참여하며

이웃에게 우리 마음을 주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조건 없는 헌신적인 사랑(Agape)을

본받으려고 애쓴다.

남이 나를 욕하고 못살게 굴어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그를 향한 사랑의 불꽃을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

 

‘아가패’를 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자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랑을 거절하면,

우리는 신기루와 같은 사람,

사랑도 환상도 다 부수어버리고

하느님과 이웃의 마음속에

상처만 남기고 떠나가는 사람,

없느니만 못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도 짧은 기간의 만남으로나마

희망과 꿈에 취하게 해주는

사람이라도 되려면

하느님과 이웃에게

아낌없이 마음을 드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음을 주려면

가슴을 열고

상처를 입을 각오가 필요하다.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III. 주일 복음 묵상․

  해설(다해). 가톨릭신문사 2월 18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