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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닮아야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부활 제2주일)
   2010/04/09  17:33

지금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닮아야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요한복음 20,19-3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옆구리와 손의 상흔 속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토마스에게

그렇게 확인해보고

불신을 고집하지 말고

당신의 부활을 믿고 따르라고 이르셨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분의 상흔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발현과 말씀에 매료되어 곧

‘내 주님, 내 하느님’ 하며

신앙고백을 하기에 이르렀다.

토마스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육안으로 보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만나 뵈었다.

마리아 막달레나(요한 20,14-15)와

다른 일곱 제자들(요한 21,4)과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루카 24,16)

육안으로는 그분을 알아 뵙지 못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영적인 몸이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그리스도의 발현이라는 특혜를 받고

부활신앙에 이르렀지만,

이런 특혜를 받지 못하는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받아들여야

이 부활을 믿고 따를 수 있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을 뵙고서

믿은 제자들만큼 복 받은 이들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들보다 더 고귀한 이들이라고

강복하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성령의 힘으로 보이지 않게

현존하시는 오늘날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그분의 부활을 믿고 따른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차원이 높은 믿음이다.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시면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마음에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께 가 있어야

그분을 알아 뵐 수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심에서 해방된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만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

눈은 마음의 거울이고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있는 것만 보고

아는 것만큼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아는 것만큼

그분을 뵐 수 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뵐

마음의 눈을 뜨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그분의 가르침, 사고방식,

가치관, 성격을 본받아야

마음의 눈을 뜬다.

그러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공부하고

속담이나 격언이나 명언을 벗하며 사는 것이다.

 

“말, 그것으로 말미암아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산 이를 묻을 수도 있다”(H. 하이네).

 

이처럼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분을 닮아야

천국에서 그분을 얼굴을 맞대고 뵐 수 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

  인간의 행복은 이 한 마디로 다한다”

   (L. Tolstoi).

 

밤 열시쯤 시내버스는

고등학생들로 만원인데

그 복잡한 와중에서도

성경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

개신교 신자들이다.

그러나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

아니, 우리 자신들이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중에서 열심한 사람이라면

고작해서 묵주기도밖에 더 바치겠는가?

묵주 알만 굴리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뵙기 어렵다.

우리도 버스나 지하철이나 어디서든지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읽을 용기와 열정을 가져야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하느님께 간청할 자격이 생긴다.

 

“할 수 있다고 자꾸 말하면

  결국 행동으로 옮겨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당신이 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못하게 될 것이다.”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III. 주일 복음 묵상․

   해설(다해). 가톨릭신문사 2월 18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