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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를 죽이려는 원수는 우리 자신이다(부활 제4주일)
   2010/04/23  17:45

우리를 죽이려는 원수는 우리 자신이다.

 

요한 10,27-30

 

 

예수님은 당신이

양떼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풍성하게 베풀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참된 목자라고 이르셨다.

그러나 당대 바리사이들은 도둑처럼

양떼에게는 무관심하여

이리 떼에게 양들을 빼앗기고

양떼를 죽였다.

바리사이들과는 반대로,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양떼를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으신다.

그래서 원수들이 당신 제자들을

파멸에 떨어지게 유혹해도

그들에게서 영생을 빼앗을 수 없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

당신 양떼를 죄악과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시기 때문이다(요한 17,15).

 

예수님의 양떼인 우리를

그분에게서 떼어놓으려는 원수는

우리의 자기중심주의,

이기심,

독선,

물질만능주의,

현세생활에 대한 집착 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원수들은 우리를 정신병자로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보편타당한 척도에 따라

자신과 이웃을 평가하지 않고

각자가 달리 만든 저울로

자신과 상대방을 평가하고 비판한다.

제각기 다른 사고방식, 가치관, 인생관,

버릇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기 나름의 문화적 배경, 인생체험,

지식과 선입견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처신한다.

늘 우리는 어딘가에,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속에 각기 다른 자와

저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뜻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만든 저울을

표준으로 삼고

다른 사람들을 저울질하는 것은

보편타당한 저울의 눈금을 속이는 짓이다.

이는 개인주의에 빠져

자기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기를 다듬지 않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처럼 나는 자기기만이나

자기착각이라는 병에 걸리지 않았는가?

 

“새는 가는 실에 매여도 날지 못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우리가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위에서 말한 영적인 원수들을 이기는 것이다.

이기심을 죽여야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란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사랑은

  죽음의 시초이며,

  하느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은

  생명의 시초이다”(L. Tolstoi, <독서론>).

 

사랑 없이는 나의 실존은 생각할 수도 없다.

사랑을 거절하는 사람은

본능과 이기심의 노예가 되고 만다.

이기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진정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이다.

나아가서,

사랑을 무시하는 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이 없으면 일도 재미없고

살맛도 없으며

눈물만 나온다.

사랑하는 이가 없으면

내 인생은 건반이 빠진 피아노와 같다.

랑을 그만두는 날 삶의 힘이 끝난다.

또한 우리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순식간에 재앙에 빠질 것이다.

사랑을 거절하고

무관심하거나

증오를 마음속에 담고 있는 것은

더럽고 고약한 냄새가 나는 오물을

냉장고에 담아두고 사는 짓이요

그 독소로 죽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사랑으로.

  우리는 어떻게 멸망할 것인가?

  사랑이 없으면.

  우리들은 무엇으로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가?

  사랑에 의해서.

  우리를 울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우리를 늘 결합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괴테, ‘슈타인 부인에게’).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III. 주일 복음 묵상․

   해설(다해). 가톨릭신문사 2월 18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