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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통죄(사순 제5주일)
   2010/03/20  7:47

간통죄

 

요한복음 8,1-11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기혼녀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물었다.

그를 기혼녀로 여기는 이유는

그 당시 간음죄가

결혼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 사이의

불륜을 가리키고

기혼남과 처녀의 불륜은

간음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이

그 여인을 돌로 때려죽이려 한 것은

기혼녀가 간음을 한 경우에

적용된 율법이기 때문이다(신명 22,23-24).

예수님이 그의 간음죄를 용서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면

율법을 어기시게 된다.

또한 율법규정에 따라

그녀를 돌로 쳐 죽이라(신명 22,21)고

명하신다면

사형집행권을 독점한

로마 총독과 알력관계를 자초하시게 된다.

예수님은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당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녀를 볼모로 잡았음을 알고 계셨다.

그의 남편도

아내를 회개시켜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는커녕

그녀의 간음현장을 덮치게 하여

증인까지 확보한 것 같다.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시는 상징행동을 보이셨다.

그 뜻은 예레미야서에 제시된 대로

상징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주님,

  당신을 저버린 이는 누구나

  수치를 당하고

   당신에게서 돌아선 이는

   땅에 새겨지리이다.

   그들이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을

   저버린 탓입니다”(예레 17, 13).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단죄하려고 광분한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이 성경 구절에서 말하는 이들과

같은 인간임을

위의 상징행동을 통해 드러내신 것이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상징행동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간음한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거듭 묻자

예수님은

죄 없는 이들이 먼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재판관이

죄가 없어야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사법권을 근본적으로 인정하며

간음에 대한 율법규정을

격분한 상태에서 강행하려는 열성분자들인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율법의 취지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엇인가 쓰셨는데,

이는 하느님이 심판주이시고

죄인의 죄를 먼지 속에 쓰신다는 뜻이다.

그러자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리를 떴다.

나이가 많을수록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는

예수님만이 간음한 여자 곁에 남아 계셨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용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이르셨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을 미워하지 마라”(세네카)

 

라는 식으로

 간음녀의 죄와 그녀 자신을 구별하지 않으셨다.

세네카의 이 말은

죄의 지배를 받는 사회구조 속에서

불가피하게 이 구조의 희생이 되거나

죄를 짓는 경우에 적용될 것이다.

간음한 그 여자는

용서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어도

공짜로 죄 용서라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았다.

 

죄의식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체험이요

구원의 시작이다.

자기의 죄를 알지 못하는 이는

진실로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

죄는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쳐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을 닮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양심과 십계명과 사랑의 이중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닮지 않았는지를 따져보고

우리 죄를 알아낼 수 있다.

함께 사는 사람들이

충분히 사랑하고

더 바랄 나위 없이 사랑받고 있다고

고백할 수 없으면

그들은 모두 사랑에 빚진 죄인들이다.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데도

죄의식이 없는 사람은

착각에 빠진 사람이고

구원받기 어렵다.

자주 고해성사를 받지 않으면

지은 죄를 쉽게 잊어버릴 뿐만 아니라

죄의식도 약해진다.

또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께 많은 죄를 용서받는 반면,

예수님을 적게 사랑하는 사람은

적게 용서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습니다”(1베드 4,8).

 

 

                  신간안내

 

박영식, 말씀의 등불 III. 주일 복음 해설, 

   묵상 (다해). 가톨릭신문사 2010년

   2월 18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