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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인생은 우리가 치른 만큼 값진 것이다"(대림 제1주일)
   2012/12/01  19:50

“우리 인생은 우리가 치른 만큼 값진 것이다.”

(대림 제1주일)

루카복음 21,25-28.34-36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코헬 3,1-4). 인류역사도 시작과 끝이 있다. 사람은 창조주와 관계를 끊어 파멸과 소멸의 운명을 자초했다. 하느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신 당신의 창조가 인간의 교만으로 부패와 죽음으로 전락하자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셨다. 파멸의 운명에 떨어진 옛 세계는 세상종말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 천상 세계로 대체된다. 그날은 ‘주님의 날’이라 한다. 내가 죽을 때가 나에게는 세상종말이요 최후심판을 받는 날이다. 그날이 나에게 언제 닥칠지 예상하기 어렵다. 오늘 유전자감식법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멀지 않아 웬만한 질병은 줄기세포학으로 쉽게 고치고 장수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90살 내지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고 여기고 노후를 행복하고 보람있게 지내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방 죽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세상종말이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확실히 닥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다지 다급한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떤 수사님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발현하여 그에게 이제 하느님의 나라로 갈 시간이 되었다고 알렸다. 그 수사님은 이렇게 많은 음식 찌꺼기를 어떻게 하라고 지금 죽게 하시느냐고 투덜대면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천사는 그의 간청을 받아들였다. 그 후 수사님은 수도원 쓰레기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천사가 다시 나타나서 인제 하늘나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님은 그곳에 영원히 살게 되는데, 몇 년 만 더 이 세상에 있으면서 쓰레기를 많이 없앤 다음 가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다시 조금 더 참아달라고 간청했다. 천사는 이번에도 양보했다. 수사님은 수도원 밭에서 김을 매고 있었다. 또 천사는 그에게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수사님은 밭에 나는 잡초를 제거하느라고 아직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으니 준비기간을 달라고 말했다. 천사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수사님은 늙고 병들어 용기도 의욕도 없어지고 죽음의 고통 속에서 신음만 할뿐 정작 죽을 준비를 할 수 없었단다.

내 마음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다스리기 어렵다. 내 말을 듣지 않는 내 마음이 원망스러워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우리 마음은 나이 먹을수록 더 나빠지고 굳어져 버릴 수도 있다. 젊었을 때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은 늙은 뒤에는 거짓말을 더 잘 하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 죽기 전에 총고해성사를 보고 하느님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죽겠다고 지금 결심을 해도 결국에는 하느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웃을 욕하면서 죽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병자성사를 주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거절하거나 회개 자체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어렸을 때보다 지금 내가 더 사랑이 많고 순수한지 스스로 물어보면 이기적인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두 팔꿈치로 남을 제쳐야 자기가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또한 우리는 죽은 뒤에 좋은 데 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 하느님,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제가 당신을 경배한다면 저를 지옥에서 불타게 하소서. 천국에 대한 희망으로 당신을 경배한다면 저를 천국에서 내쫓아 주소서. 그러나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내가 당신을 경배한다면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보류하지 마소서.”(Rabia al-Adawiyya, 717-801년. 메소포타미아). 오히려 신앙생활은 지금 가족들과 이웃과 함께 행복하고 기쁘게 살기 위함이다. 그래야 죽은 뒤에 하느님께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되도록 어릴 때부터 죽음을 생각해보고 자기 삶을 보다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은 왜 죽는가’ 하는 물음은 곧 ‘사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에 직결된다’(박두진, 흙에 대하여). 죽음을 아는 것, 그것이 삶을 아는 지름길이다. 대 알렉산더 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항상 종을 데리고 다녔다. 종은 아침마다 “대왕님,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대 알렉산더 왕은 유언으로 자기가 죽으면 두 손을 관 밖으로 나오게 하라고 했다. 광활한 대제국을 손아귀에 넣은 사람이지만 죽은 뒤에는 다 버리고 빈손으로 떠나감을 깨우쳐주려 했다. 옛 요가 수행자들도 해골을 보며 명상했다. 그러다 생사를 넘나드는 진리를 깨닫고 벌떡 일어나 춤을 췄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부다가 제자의 이 질문에 대답하기를,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것은 누구나 다 죽는데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이다.”

“너희는 깨어 기도하고 있으라.”(마르 14,38)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지속적인 기도로 당신의 고난과 죽음의 시간, 악의 세력과 결정적 투쟁의 시간에 참여하라는 말씀이다. 기도하면 깨어 있고 이기심과 현세의 안락한 삶을 위해 하느님과 이웃의 행복을 아랑곳하지 않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 것이 영적으로 늘 깨어 있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믿음의 눈이라는 새로운 안경을 쓰고 대인관계와 일상사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깨어 있는 사람은 마음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활짝 열어놓고 날마다 아침밥을 준비하듯 사랑을 새롭게 시작하려고 결심한다. 그는 삶의 목적이 사랑과 우정과 동료애를 지키는 것이라고 여긴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치른 만큼 값진 것이다.”(F. Mauriac). 그러나 오로지 성공과 출세를 향해 매진하여 목적지에 다다른다 하더라도 사랑과 우정을 외면하고 만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후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깨어 있으려면 온갖 소비풍조를 조장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대중매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영원한 것을 보지 못하게 가리는 장애물이고 우리를 천박하고 이기적인 인간, 무신론자로 만드는 독소이다.

 

구원이나 심판은 날마다 죽음을 의식하며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달려 있다. 주위에서 암이나 불치병에 걸렸다는 슬픈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 불행이 항상 자기를 지나친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나는 잘 죽기 위해 사는가?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가, 나, 다해) 가톨릭출판사

----, 마태오 복음 해설. 가톨릭출판사 2012년

----, 공관복음을 어떻게 해설할까. 가톨릭출판사 2012년

----, 마르코 복음 해설. 가톨릭출판사 2012년 개정 초판 1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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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와 후기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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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

        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년 초판 3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요한복음과 바오로 사도 서간과

        요한 묵시록의 핵심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년 초판 1쇄

----, 성경과 주요교리. 가톨릭신문사 2006년. 초판 2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