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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금 만나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은 분과 맺은 인연(대림 제4주일)
   2012/12/21  20:12

방금 만나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은 분과 맺은 인연(대림 제4주일)

 

루카복음 1,39-45

 

 

 

성모님은 하느님이 아기 예수님을 자기 몸에 잉태하게 하신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엘리사벳을 찾아가셨다. 엘리사벳과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찾아오신 예수님의 방문을 기뻐했다. 어머니 태내에 있던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이미 성모님의 태내에 계신 아기 예수님이 자기 집으로 오신 것을 느끼고 그분과 인연을 맺는 특혜를 받았다. 예수님과 그의 만남과는 반대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에사우와 야곱은 서로 악연이었다. 이 두 형제는 끝까지 원수가 되고 그 후손들끼리도 그러했다. 그들과는 반대로,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 태중에서 예수님과 맺은 인연 때문에 어른이 된 뒤 예수 메시아께서 오심을 준비하는 선구자가 되어 유다인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목숨을 바쳤다. 세례자 요한처럼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하느님의 도구로 예정된 사람은 바오로 사도이다. 바오로는 하느님이 자기를 어머니의 태 안에서 이미 선택하여 사도로 부르셨다고 자각했다(갈라 1,15- 16). 그는 한때 교회를 박해했지만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느님이 자기를 복음 선포자로 예정하신 것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하느님과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복음을 선포하다가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았던 것이다.

 

인간은 우연히 이 세상에 와서 어떤 숙명이나 필연에 따라 살다 사라지고 마는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사랑할 힘을 주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정하셨다. 우리는 끊임없이 호흡을 하기 때문에 살 듯, 늘 하느님의 뜻이 새겨진 양심, 하느님의 말씀을 지켜 하느님과 관계를 보존해야 살 수 있다. 하느님은 내 삶의 기원이요 중심이며 의미이시기 때문이다. 매 순간 숨을 쉴 때마다 하느님의 보살피심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양심을 무시하면 사람일 수 없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은 하느님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산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하느님이 본질상 우리 없이도 영원히 행복의 극치 속에서 사시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분으로서 우리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신다. 이처럼 하느님은 우리와 맺으신 부자관계의 인연을 끝까지 지키신다. 우리도 사랑으로 가득 차면 하느님과 맺은 인연인 하느님의 자녀신분을 보존할 수 있다. 하느님이 우리의 추억에 남아 있는 존재만 돼서는 안 되고 언제나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분이 되시도록 이 인연을 계속 이어야 한다. 세례자 요한과 바오로 사도와 수많은 성인들이 그러했다. 자녀가 부모의 자녀가 아니라고 잡아떼도 부모의 자녀가 아닐 수 없듯,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해도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 될 수 없는 법이다.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다.” 아이는 정말 자기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인지 궁금해 하면서 눈물을 글썽인다. 이 농담은 깊은 뜻이 있다. 사람의 만남은 신비라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를, 부모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이 부자관계로 정해주셨다. 인연은 서로 마음을 주고 상대방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 남편이요 아내요 자녀요 친구이다.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이 그 사람을 향해 이어진 것이다. 그도 나를 만나기 위해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다. 내가 헤맬 때, 몸부림 칠 때, 달리거나 걸어갈 때 나도 당신도 서로를 향해 걸어온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추억의 한 장으로 남거나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하고 마는 인연도 있지만 지난 나의 한 해를 의미심장하게 만들어주는 인연도 있다. 인연 중에서 참 좋은 인연은 생각만 해도 힘이 나게 한다. 방금 만나고 왔는데도 또 보고 싶은 사람,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생각만으로 기쁨을 주는 사람, 이런 사람과 맺은 인연이 참으로 값지다. 또한 인생에는 가끔 신비스러운 만남이 찾아와서 우리를 인정해주고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진 큰 가능성이 비로소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

 

인연의 싹은 하느님의 섭리이고, 인연을 이어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인연도 사랑도 아이를 키우듯 마음을 다해 끊임없이 보살피고 배려하고 정성을 기울이고 아껴야 보존된다.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고독하게 살 각오를 하고 끊임없이 서로 적응하고 협상해야 한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애절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게 된다. 언니가 살림을 검소하게 살아 저축한 돈으로 동생이 집을 사는 데 큰 보탬을 주었다. 동생은 무슨 인연으로 나는 이러한 언니를 두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집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면서 형제의 인연의 신비에 대해 감탄한다. 또한 친구의 인연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며 대신 짐을 져주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큰 만남,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 저명인사와 만남을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과 만남, 이웃과 만남, 친구와 만남이 더 큰 의미가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영향과 의미를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작은 만남이라도 큰 인연으로 여기고 결코 소홀히 여기지 말고 이 작은 만남을 고이 보존하자. 큰 인연에만 집착하지 않고 작은 인연도 계속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깊은 영향을 받고 날이 갈수록 풍요로운 삶을 산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한때는 피의자였던 천 모(27)씨는 추운 겨울에 속옷도 못 입고 벌벌 떨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서로 다투다가 폭행죄를 지었다. 그를 체포한 경찰은 사비를 털어 속옷을 사 입혔다. 피의자와 경찰, 이 두 사람은 속옷 한 벌의 인연으로 따뜻한 세상을 가꾸어 나갔다. 이들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천 씨가 구치소에서 그 경찰에게 형사님, 고맙습니다. 덕분에 새로 살아갈 기운을 얻었습니다.”라는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맞춤법도 틀리고 띄어쓰기도 엉망이었지만 그 경찰은 감격했다. 그래서 구치소를 찾기 시작했고 천 씨의 출소일에는 겨울옷까지 사들고 그의 새 출발을 축하했단다. 죄인이요 폐인이 된 천 씨가 이 인연으로 훌륭한 시민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땀과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가장 더러운 만남은 생선처럼 비린내가 나는 만남이다. 가장 위험한 만남은 꽃과 같다. 피었다가 시들어버리는 만남이다. 가장 불안정한 만남은 건전지처럼 충전되지 않으면 없어져버리는 만남이다.

 

인간은 상호관계로 묶어지는 매듭이요, 거미줄이며, 그물이다. 이 인간관계만이 유일한 문제이다.”(생텍쥐페리)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 다해) 가톨릭출판사

----, 마태오 복음 해설. 가톨릭출판사 2012

----, 공관복음을 어떻게 해설할까. 가톨릭출판사 2012

----, 마르코 복음 해설. 가톨릭출판사 2012년 개정 초판 1

----, 오늘 읽는 요한 묵시록. 바오로딸 2012년 초판 2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113월 초판 3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역사서)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 초판 2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초판 3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요한복음과 바오로 사도 서간과

         요한 묵시록의 핵심 가르침. 가톨릭출판사 2012초판 1

----, 성경과 주요교리. 가톨릭신문사 2006. 초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