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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등포의 쉬바이쩌 박사'(연중 제2주일)
   2014/01/18  11:13

'영등포의 쉬바이쩌 박사'(연중 제2주일)

요한복음 1,29-34

서울 영등포에 시간을 3040년쯤 뒤로 맞춰놓은 것 같은 초라한 동네가 있다. 집과 집을 양철지붕으로 이어 붙인 쪽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다. 어른 두세 명이 나란히 서기만 해도 꽉 차는 좁디좁은 골목에서는 동네 전체를 휘감고 있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곳 영등포 쪽방촌 골목 한가운데 오래 전에 삼층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집이 요셉의원이다. 1987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 불리던 고() 선우경식 의학박사가 세운 무료병원이다. 날마다 노숙자, 행려자, 외국인 노동자 들 100명이 넘는 환자가 밀려든다. 그들은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단 한 번의 실수로 교도소에서 나왔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서 너무 깊고 가혹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이란다. 요셉의원은 정부나 서울시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코흘리개 꼬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보통 사람들이 한 푼 두 푼을 모아 보내준 성금과 자원봉사자들의 열정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선우경식 박사가 200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요셉의원을 지키겠다고 나선 이가 신완식(64) 의학박사다. 신 박사는 감염내과 분야 한국 최고 권위자요 2년 전만 해도 가톨릭의대 교수, 여의도성모병원 내과과장, 가톨릭중앙의료원 세포치료 사업단장, 가톨릭 생명위원회 위원이었던 분이다. 이분은 정년을 6년이나 남겨두고 교수직을 포기하고 요셉의원으로 옮겨왔다. 신완식 박사는 치료비를 한 푼 낼 수 없는 노숙자와 행려자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영등포 슈바이처로 알려져 있다. 신 박사는 이곳에서 가슴으로 웃는 법을 알았고, 세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찾았다.”고 했다. “저보다 일찍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청소를 해 주시는 분들, 술 취하고 더러운 행색으로 밀려드는 환자들을 마치 자기 몸을 씻어내듯 닦아주면서도 단 한 번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자원봉사자들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주하게 됩니다. 그분들을 마주하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더군요. 제가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또 교수로 부족한 것 없이 나만을 생각하며 살 때는 좀처럼 꺼내지 않았던 말이지요.” 이처럼 신 박사는 요셉의원에서 자기가 제일 많은 혜택을 받는 사람이라고 했다. “얼마 전 하반신을 못 쓰는 행려 환자가 실려 왔지요. 얼마나 안 씻었는지 몸 전체에서 심한 악취가 났어요. 치료를 위해 발과 항문을 반드시 씻겨야 했는데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저조차 발과 항문 주위를 씻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어느 봉사자 분께서 조용히 행려 환자의 옷을 벗기더니 환자의 발에 따뜻한 물을 몇 번 적시더군요. 그리곤 그 발에 입을 맞추셨지요. 그 순간 봉사자 분의 표정에선 더 이상 악취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후 발과 항문 주변까지 깨끗이 씻겨 주셨지요.” 신 박사는 불과 30여 분쯤이었는데 지금까지 제 기억에 담긴 가장 성스럽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답니다.” 신 완식 박사와 많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삶 덕분에 아무에게도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구제되고 있다. 이 봉사자들은 우리의 무관심과 이기심이라는 죄를 대신 속죄해주는 분들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속죄의 어린양이 되셨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죗값을 우리 대신에 치러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의 생명인 사랑과 기쁨과 열정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속죄 죽음은 사랑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임을 가르친다. 예수님이 속죄의 희생 제물로 돌아가신 목적은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고난을 피하지 말고 과감하게 목숨을 바쳐 영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사랑을 그만두는 날 삶의 힘은 끝난다. 또 다른 목적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받는 우리의 고통도 속죄의 힘을 내는 구원의 선물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날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다는 지향만 가지면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예수님의 속죄죽음에 연결되어 구원의 효과를 낸다. 선우경식박사와 신완식박사와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이 속죄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이들이 아닐까?

인생은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가진 최상의 것을 주면 최상의 것을 되돌려 받는다. 이처럼 사랑이 있는 곳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에겐가 항상 필요한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고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되겠다.

어려움 속에는 우리를 위해 일해 주는 힘이 있다” (R.M. 릴케). 개미들이 자기 몸의 열 배가 넘는 먹이를 옮기기 위해 먹이를 디딤돌로 삼고 굴러가듯, 우리도 너무 무겁게 여겨지는 짐이라도 개미처럼 짐을 디딤돌로 삼아 운반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내 짐이 너무 무겁다고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달팽이처럼 자기에게만 폭 빠지면 목적지에 다다른 뒤에는 아무도 내 주변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고 있다면 이웃을 위한 희생과 고통이 고귀한 재산이요 축복임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 또한 짐을 비슷하게 나누어지고 가는 유대감과 공동책임감을 가져야 죽을 때까지 부부관계나 우정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다. 내가 지금 지고 가는 짐이 많이 무거워도 이웃의 짐을 나누어 짊어주는 친구가 되어주자. 이런 친구가 선우경식 박사와 신완식 박사와 자원봉사자들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요한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신나게 살아볼만한 곳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도울 때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을 돕는 일이 된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이며, 삶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아름다운 보상이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하늘의 태양보다 더 찬란한 곳이다.

타인의 불행에 눈물 짓고 서로 사랑하고 축하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A. 지드)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 해설(가해). 가톨릭출판2007.

-----, 루카 복음(예수의 유년사). -루카복음 1-2. 입문, 새 본 문 번역,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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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 복음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2년 개정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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