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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온 탈북자 이순옥씨(연중 제8주일)
   2014/03/01  13:32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온 탈북자 이순옥씨

(연중 제8주일)

 

저는 북한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50년을 북한에서 살며 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이순옥입니다. 북한이라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제가 영문도 모른 채 지하 감옥에서 모진 고문과 사형선고까지 받고 사형집행 날 극적으로 사형을 취소한다는 통지와 함께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겪은 북한 신자들의 모습을 전해드려야 하는 책임을 통감합니다어느 날 재정부장 교도관이 저를 불러놓고는 단단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매일 미친 정신병자 놈들만 모여 있는 곳으로 간다. 그 놈들은 당과 수령님을 믿지 않고 하늘을 믿는 미친 자들이니 너는 그 놈들과는 절대로 눈 길 한 번 마주치지 말라. 네가 그자들이 믿는 하늘을 믿게 되면 네 목숨도 여기서 끝나게 될 것이다.” 저는 거기에 가서 그 사람들을 보는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1,500도 이상 시뻘겋게 타오르는 용광로의 고열 노동 작업장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짐승 같기도 하고 외계인 같기도 하고 도무지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몰골이었습니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얼굴은 해골 같고, 이빨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키가 다 줄어들어서 120센티미터, 130센티미터, 땅에 딱 붙은 난쟁이들만 움직였습니다. 잡혀 올 때는 정상인이었으나 여기 끌려와서는 굶주린 채 하루 열여섯 시간, 열여덟 시간 용광로 같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척추가 녹아 내려 등이 혹이 되고 몸이 다 휘어져서 앞가슴과 배가 마주 붙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로서 발가벗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멀리서 그 사람들을 보았을 때 모두 다 새카만 옷을 입었다고 여겼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맨 살가죽에다 앞에 시커먼 고무 앞치마 하나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용광로의 뜨거운 불꽃이 앙상하게 말라붙은 살가죽에 튀고 또 튀어 딱지가 앉고 그 자리에 쇳물이 떨어져 피부가 타버려 마치 짐승의 가죽과 같았습니다.

 

 

어느 날 교도관들이 신자들에게 너희들 가운데서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하늘을 믿지 않고 수령님을 믿겠다고 하면 자유 세상으로 내보내서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 하며 하늘을 거부하라고 채찍으로 때리고 발로 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 수 백 명 죄수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침묵으로 맞섰습니다. 독이 오른 교도관이 그들에게 달려가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끌어내다가 땅바닥에 엎어 놓고는 구둣발로 내리밟고 짓이겼습니다.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고 허리와 팔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신자들은 구둣발로 짓밟혀 뼈가 부러지고 머리통이 부서지는 가운데 애타게 주 예수님을 신음소리처럼 부르고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수령님과 당을 믿는 우리가 사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 너희가 사는가 보자.” 하며 용광로의 펄펄 끓는 쇳물통을 끌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쇳물을 피투성이가 된 그 신자들 위에 부었습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살이 녹고 뼈가 타면서 숯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내 눈앞에서 사람이 숯덩이로 변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우리 어머니가 평생을 기도하신 그 하늘을 부르며 저를 살려달라고, 저렇게 불에 타 죽으며 애절하게 도움을 간청하는 저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누구를 또 공개 처형시키려는지 6천명이나 되는 수용소 사람들을 한 자리에 다 모이게 했습니다. 공개처형 때는 언제나 하늘을 믿는 신자들이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하라는 김일성의 특별지시가 있어서 그들이 무릎 사이에 목을 끼우고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죽어서도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시체도 목을 꺾어 거적에 말아서 어두컴컴한 산골짜기 나무 밑에 파묻게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목을 무릎에다 끼우고 맨 앞줄에 엎드려 있던 신자들이 내가 석방된다는 소리에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분들이 밖에 나가거든 자기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 달라.”고 눈빛으로 간절히 말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이 시대의 순교자라고 봅니다. 저는 주님의 은총으로 1996년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저의 증언으로 북한 신자들의 인권문제를 150여개 나라에 널리 알리자 온 세계가 떠들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 100여명이 프랑스에 모여 북한 신자들의 인권을 위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북한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탈북자 이순옥씨의 증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