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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은 무조건 자신을 불태우는 활동이다(부활 제2주일)
   2014/04/26  10:3

사랑은 무조건 자신을 불태우는 활동이다

(부활 제2주일)

 

           요한복음 20,19-31

 

어느 목동이 시리아의 한 강변으로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오고 있었다. 물을 싫어하는 양들을 몰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곳으로 여행 온 어느 아들이 그것을 이상히 여겨 어머니에게 물었단다. “어머니, 저 목동은 저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는 거지요?” “글쎄. 그런데 얘야, 저 목동의 얼굴은 아무 걱정이 없는 듯이 평온하기만 하지 않니?” 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목동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이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고 합니까?” 그때 강가에선 양떼들이 매애, 매애울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물을 본 새끼 양들은 놀라 어미 양 옆에 바싹 붙어 섰다. 그때였습니다. 목동은 겁먹은 눈으로 서있는 많은 양들 가운데서 귀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어깨에 둘러멨다. 그 아들이 아니 어쩌려고 저러지요?” 하는 물음을 제기했다. 그제야 어머니는 목동이 양떼를 데리고 강을 건너는 방법을 알았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새끼 양을 둘러멘 목동은 성큼성큼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폭은 넓었지만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새끼를 빼앗긴 어미 양이 몇 번이나 매애, 매애하고 울며 망설이다가 강물 속으로 텀벙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수백 마리 양들이 뒤따라 일제히 물속으로 뛰어들어 강을 건넜다. 그 목동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줄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영원히, 무조건 짝사랑을 한다. 부모는 자녀가 집을 나가면 그 순간부터 하염없이 집 밖에서 그를 기다린다. 자녀는 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은 나를 잊어버리고 주는 것이다. 사랑은 끊임없이 그냥 연소燃燒되는 활동이다. 사랑은 보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지혜가 깊은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 해서, 또는 이익이 있으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 그 자체가 행복을 느끼게 하므로 사랑하는 것이다.”(파스칼)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힘으로 태어나서 평생 행복하게 살며 이웃에게 사랑을 전해주어 기쁘게 살 힘을 주는 것이다. 불행과 실망과 죽음은 사랑이 없어진 결과다.

 

예수님은 부활절 주일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고 성령을 베풀고 그들을 온 세상에 파견하셨다. ‘이라는 그리스말의 어원은 공기, , 바람을 뜻한다(3,8). 숨은 곧 생명이다. 숨이 사라지면 생명도 사라진다. 숨을 멈춘 사람을 다시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시키듯,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숨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부활생명을 창조한다. 예수님이 숨을 내쉬신 행위에서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내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신 것(창세 2,7)이 연상된다. 흙덩이가 하느님의 숨에 힘입어 생명체가 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하느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죄와 죽음으로 운명지어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부활하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의 후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하고 당신의 영을 보내 하느님의 생명을 베푸시는 것이다.

 

영은 예수님의 죽음의 열매요 죽음에서 비롯된 힘이다. 이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옴으로써 그분이 영을 베푸시는 분이 되신 데서 비롯된 선물이다(요한 19, 34). 요한 복음사가는 그것을 상징적인 뜻으로, 예외적이고 특별한 표징으로 묘사했다. 물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힘입어 생명을 창조하는 성령을 상징한다(7,37-39 참조). 십자가 위에서 성령을 베풀고 싶다는 뜻으로 목마르다.”(19,28) 하고 외치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성령이 나왔다. 예수님이 성령세례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인류를 한 가족으로 묶는 힘인 사랑은 속죄 죽음을 당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에게서 나온다. 시리아의 그 목동이 새끼 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무시무시한 강물 속으로 텀벙 뛰어들 듯, 마음속에 사랑을 품는 사람은 모든 불행과 역경과 죽음까지 이겨낸다. 성령을 모시는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와 나라에는 언제나 사랑과 웃음이 흘러넘친다. 자기 가족이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부모, 부부, 자녀들이 자기 가정을 성령의 궁전으로 만든다. 사랑과 행복과 기쁨의 샘이신 하느님은 가족들이 함께 기도하는 가정에 임하여 사랑이 흘러넘치는 가정으로 만들어주신다. 그러나 성령의 감도를 거절하는 가정의 가족 이기주의는 개인 이기주의보다 훨씬 참혹하다. 자기 때문에 남의 행복이 희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을 이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Leo Tolstoi). 날마다 성경을 읽고 훌륭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 성령을 체험하는 가족은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이러한 가정 안에 사는 사람들이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사도가 된다. 훌륭한 자녀들은 훌륭한 부모 슬하에서 나오고, 훌륭한 남편은 훌륭한 아내를, 훌륭한 아내는 훌륭한 남편을 만드는 법이기 때문이다.

 

수 십미터 바다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 여객선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혼자 표류하지 않으려고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서로 끈으로 꼭꼭 묶고 바닥에 둘씩, 셋씩 엉켜 죽어 있었단다. 이 여객선 침몰 사건은 성령을 무시한 짓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계각층의 이기주의자들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의 노예가 된 정권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성령의 감도를 외면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체제와 그 운용은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때문에 미개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 같은 그리스도교 국가의 국민들은 성령의 감도에 순응하기 때문에 생명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우리보다 더 잘 지키고 소위 선진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랑과 정의와 공동선을 살리는 사회를 만들려면 우리 각자의 가정이 성령의 궁전이 되어야 한다.

 

 

성령을 베푸시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는 사람만이

이웃에게 성령을 전할 수 있다.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 해설(가해). 가톨릭출판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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