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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이로 때려줘야 소리를 내는 종(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2014/06/28  11:56

공이로 때려줘야 소리를 내는 종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마태오복음 16,13-20

 

기원후 742년 신라 경덕왕이 부왕인 성덕대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기 시작해서 30여 년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771년 혜공왕 때 완공된 에밀레종은 국보 29호로 지정돼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아기를 시주해 넣었다는 전설로 아기의 울음소리를 본떠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구리 12만 근으로 만든 에밀레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웅장하고 소리가 맑아 100여리 밖인 포항, 울산 등지에까지 울려 퍼졌다고 전해진다. 문화재청은 에밀레종을 계속 타종할 경우 금속 피로도가 증가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2003년 개천절 때 33번 종을 울린 뒤 타종을 중단했다. 황병기 선생이 이 종이 마지막으로 울린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앞자리에 가 앉았는데 경주 박물관장이 같이 치자고 제의를 했단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소리 때문에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황 선생은 세 번 치고 내려왔다. 그러나 건너편 반월 산성에 가서 들으라고 해서 갔더니 과연 은은한 에밀레종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소설 ‘25를 쓴 루마니아의 게오르그는 1954년 경주에서 이 종소리를 듣고 이르기를, “서양종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귀찮게 하는 소리인데, 이 에밀레종은 피곤한 영혼들에게 안식과 평화를 준다.” 현대 과학으로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소리란다. 훼손우려 때문에 타종이 영구 중단된 에밀레종이 원형에 가깝게 복제돼 20141231일 다시 타종된다.

 

서양종은 공이가 안을 때려 몸을 흔들어줘야 소리를 낸다. 에밀레종 같은 우리나라의 범종은 한 자리에 매달려 육중하게 그냥 드리워 있다. 이 범종은 밖에서 공이로 쳐야 소리가 난다. 안에서 울리는 것이든 밖에서 울리는 소리든 우리의 모든 사고와 마음은 혼자서는 울리지 못한다. 누가 밖에서 공이로 때려주지 않고는,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내 몸과 마음을 흔들어주지 않고는,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과 마음의 소리를 울리게 할 수 없다(이어령, 생각, 37-38). 종소리가 울리면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 있어도 벌떡 일어나고 새 날을 시작한다. 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것이다. 성당에서 울려 나오는 종소리는 밀레의 이삭 줍는 부부처럼 아무리 바빠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녁 삼종기도를 바칠 여유를 준다. 누군가가 죽으면 조종이 울려 마을 전체에 슬픈 소식을 알린다. 조종소리를 들으면 아무리 바쁜 일손도 즉시 멈추고 죽은 자를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기도한다. 죽음이 자기에게도 가까이 왔음을 느끼며 잘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부부나 가족들이나 친구나 이웃 사이에 서로 공이가 되어주면 아름다운 종소리, 사랑의 종소리를 내게 된다. “남편이나 아내인 동시에 친구일 수도 있는 남자나 여자가 참된 남편이나 아내이고, 친구가 될 수 없는 남자나 여자는 남편이나 아내로도 마땅하지가 않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대인관계도 서로 친구, 스승, 제자, 형제, 자매 등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각기 자기 실존을 풍요롭게 실현할 수 있다.

 

예수님을 주님, 구세주, 선생님, 심판주로 믿고 따르는 신앙생활도 그분의 가치관과 사고방식과 성격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구세주와 심판주로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애인, 친구, 동반자로도 묵상해야 그분의 신비를 풍요롭게 체험할 수 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적용되는 많은 칭호는 그분과 우리의 관계가 풍요로우며 그분이 우리 실존의 의미를 충만하게 실현시켜 주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여러 가지 칭호로 부르면 그분의 신비에 스며들어가게 된다. 하느님의 아들이요 우리와 같은 사람이신 그분은 이웃 가운데서 당신을 찾고 이웃의 인간성을 폭넓게 이해하는 눈을 뜨게 하며 이웃을 사랑할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하느님을 닮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줄 힘을 얻는다. 그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공이가 되어주어 그들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힘을 심어준다.

 

오늘 우리나라 정치사회와 공직사회와 언론계가 금권에 사로잡혀 온갖 비리와 부정의 온상이 된지 오래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기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정치인들과 공직자들과 언론인들에게 정의를 일깨우는 공이 구실을 하는 사람이 너무 적다. 세월 호 참사로 304명이나 되는 고귀한 어린 생명이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죽어가도 그 원인과 책임을 따지지 않으려는 정부, 범인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양심마저 팔아버린 공직자들이 통치하는 우리나라, 언론인들이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비리를 정의로 둔갑시키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금년 8월에 교황님의 한국 방문을 준비하러 온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사무총장 마리오 토소 주교가 용산 참사 유족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제주 강정 해군기지 대책위원회 관계자 들을 만났다. 토소 주교는 용산참사 문제에 가톨릭교회가 어떤 역할과 활동을 했는지 물었다. 참사 이후 매일 현장을 지키며 미사를 봉헌했고, 지금도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는 말을 전해들은 토소 주교는 교회가 강제 퇴거로 쫓겨난 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에 감사드린다. 연대하는 과정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토소 주교는 자기가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진압 장면을 보면서 경찰이 노동자들에게 한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토소 주교는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이어진 미사에 대해 종교의 유무를 떠나 여러분이 주님을 모시는 것이며 종교인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남이 끝난 후, 토소 주교는 이들에게서 형제애를 느꼈으며, 얼마나 힘이 들고 상처가 많은지 느꼈다. 약하고 소외된 이들, 쫓겨난 이들과 함께한 한국의 사제, 수도자들에게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상처받은 이들 곁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일들은 가치관의 붕괴, 물신주의의 상처라면서, 참석자들에게 끝까지,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걸어가자.”고 격려했다. 토소 주교는 공권력이 밀양 주민과 수도자들을 폭력으로 진압한 상황, 밀양 송전탑이 곧 핵발전소 문제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관심을 보였다.

 

법과 생명의 존엄성을 알리는 에밀레종소리가 우리 가정과 공동체와 사회와 전국 방방곡곡에 우렁차게 울려나게 공이 구실을 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구세주와 심판주로 고백하는 신앙인이다.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 해설(가해). 가톨릭출판사 2007.

---, 루카 복음(예수의 유년사). -루카복음 1-2. 입문, 새 본문 번역, 해설?

도서 출판 으뜸사랑 2013

---, 루카 복음. 루카복음 3-24장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3

---, 마태오 복음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3년 개정초판

---, 공관복음을 어떻게 해설할까.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2

---, 마르코 복음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2년 개정 초판

---, 오늘 읽는 요한 묵시록. 바오로딸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