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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인생을 요약한 묘비명과 승천(주님 승천 대축일)
   2014/05/31  20:26

내 인생을 요약한 묘비명과 승천

(주님 승천 대축일)


마태오복음 28,16-20


단 하나뿐인 이 세계도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 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든가, 태양은 지구 위에 있다는 관점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계가 있다. 이러한 세계 이외에 해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지 않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과학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증명되고 정확한 수치로 계산되는 세계이다. 우리가 보고 측정하며 만들어낼 수 있는 이러한 세계 이외에 제3의 세계가 있다. 이 셋째 세계는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파헤쳐낼 수 없는 신비스러운 세계이다. 그것은 생명과 사랑의 세계이다. 남을 위해 죽어야 살고, 지는 사람이 이기며, 자기를 낮추어야 높아진다는 역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사랑과 정의와 자유의 세계, 고통과 죽음이 없는 세계, 참된 기쁨과 영원한 생명의 세계, 하느님의 세계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이 세계의 문을 열고 그곳으로 올라가시어 우리를 부르신다. 그분의 승천은 우리의 승천을 보장한다.


하느님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해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사랑을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한 집착,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에서 자유로워진다. 사랑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하느님께 올라갈 수 있고 이미 이 지상에서 천상 시민으로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이 지상에서의 한평생이 승천하기 위해 주어진 준비 기간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


승천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죽는 사람의 묘비명은 어떠할까? 그의 묘비명은 최상의 삶을 살았다는 증명서다.

“모든 것이 남을 위해서였으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페스탈로찌)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칼 힐티)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루와 같다.”(테레사 수녀)

“나의 생애가 끝나 죽음이 내 문을 두드릴 때 나는 그 손님 앞에 나의 생명을 가득 채웠던 그릇을 차려 놓겠습니다. 결코 빈손으로 그를 떠나보내지 않을 것입니다.”(타고르, ‘기탄잘리’)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어머님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조병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나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천상병)

“나는 창조주께 돌아갈 준비가 됐다. 창조주께서 날 만나는 고역을 치를 준비가 됐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처칠)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았다.”(에밀리 디킨슨)

“삶과 죽음에 차가운 눈길을 던져라. 말 탄 이여, 지나가라.”(예이츠)

“오 장미, 순수한 모순이여!”(릴케)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을 늘 새로운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내 위에 있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요, 다른 하나는 내 속에 있는 도덕률이다.”(칸트)

조선 후기에 장원급제했으나 당대 실권을 쥔 노론에 맞서 주자학을 비판하다 유배 중에 죽은 문신 박세당의 묘비명은 이러하다. “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조선시대 시인 백호 임제의 묘비명에는 “맑은 이름이 세상을 술렁이게 할 만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임제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요 애국자였다. 기생 황진이 무덤에 추모시를 바쳤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이 말해 주듯 머리로만 살지 않고 가슴으로 살았던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일본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받은 조선인의 친구 후세 다쓰지 변호사는 1953년 죽으며 좌우명인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라는 글을 묘비에 새겨 넣었다.

 

부활과 승천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의 묘비명은 어떠할까?

노벨 문학상을 받은 문호요 백 살 가까이 천수를 누린 버나드 쇼우의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

“아름다운 희망이 여기에 매장되었다.”(슈베르트)

“에이, 괜히 왔다 간다.”(중광스님)

“일어나지 못 해서 미안하네.”(헤밍웨이)


묘비명은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압축한 말이요 이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이다. 이 지상의 모든 부귀영화나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일보다 하느님과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훌륭한 묘비명을 쓸 수 있다. 그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 평생 나와 함게 산 사람들이 써주는 나의 묘비명이 나의 평생을 정확하게 요약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들이 지금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하느님의 평가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올라가야 하는 천국은 하느님의 말씀이 지켜지고 7성사가 거행되는 바로 이곳이다. 말씀을 실천하고 성사에 참여하는 이는 제2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생각하고 말씀하시고 활동하신다. 그래서 나의 묘비명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다.”(갈라 2,20)라고 하면 좋겠다.

 

 


잘 읽히는 책


판매처: 바오로딸, 성바오로, 가톨릭출판사

박영식, 말씀의 등불. 주일 복음 묵상 · 해설(가해). 가톨릭출판사 2007년.

---, 루카 복음(예수의 유년사). -루카복음 1-2장. 입문, 새 본문 번역, 해설? 도서 출판 으뜸사랑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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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코 복음 해설. 도서출판 으뜸사랑 2012년 개정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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