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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조선은 천주교를 박해했는가?
   2008/09/19  8:7

왜 조선은 천주교를 박해했는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1821-1846)은

라틴말, 프랑스말, 포르투칼말, 영어, 중국말에 능통하고

깊고 해박한 세계지식을 갖추었다.

정부 관리들까지도

신부님의 깊은 학식과 해박한 세계지식에 놀라워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옥중에서 관리들의 요청에 따라

영어로 된 세계지도를 번역하여

두 장의 세계지도를 그리고

간단한 세계 지리서를 꾸며 주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신부님의 학식과 덕망이 너무 아까워

두 차례의 어전회의를 열고

배교만 하면 외교관으로 등용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신부님은 이 제의를 거절했다.

1846년 9월 16일 25세의 나이로

사학(邪學)의 괴수라는 죄목으로

한강 백사장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김대건 성인을 마카오로 유학 보낸

성 정하상 바오로 순교자(1795-1839)는

정약종의 둘째 아들이다.

정약종은 천주교 신자가 되어

이승훈과 함께 주문모 신부를 맞아들이고,

제1대 조선 천주교 회장을 지내며,

1801년 서소문 밖에서

맏아들과 함께 참수 당한 순교자이다.

아버지가 순교할 때 겨우 일곱 살인 정하상은

어머니와 누이동생과 함께 풀려났다.

어머니와 누이도 순교하여 성인이 되었다.

정하상은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던

조선 후기의 대학자와 정치가로서

강진에 귀양 가 있던 정약용의 조카이다.

성 정하상은 자주 북경에 가서

사제를 보내달라고 간청하고

로마 교황님에게도 신부 파견을 간청하며

김대건 성인을 마카오로 유학보낸 분이다.

성 정하상은 앵베르 주교 밑에서

속성으로 신학교 교육을 받고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1839년 9월 22일 가족과 함께 순교했다.  


정하상 순교자는 <상재상서>를 쓰서

기해박해의 주동자인 우의정 이지연에게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알렸다.

이 글에서 천주교가 조선의 주자학 전통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사회윤리를 바로 잡는 힘이

천주교 교리에 포함되어 있다고 변호하며,

신앙의 자유를 호소했다.


왜 조선이 김대건 성인과 정하상 성인처럼

유능한 인재들을 등용하지 않고

천주교를 박해했는가?


1) 사상적 배경: 조선은 오로지 유교의 주자학만을

     정통 학문으로 인정하고

     불교, 양명학, 서학(西學), 동학 들을

     사악한 가치 체계로 여겼다.

     그래서 주자학에 사로잡힌

      당시 조선 정부가 천주교를 박해했다.


2) 사회적 배경: 조선은 유교의 사회 체제로 지탱되었다.

     가부장적 권위를 토대로

     가족의 질서를 유지하고,

     조상에게 극진한 효성을 바침으로써

     가문의 영속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을 대표하고 통제했다.

     조선 사회는 장유유서, 남녀유별,

     상하 위계질서로 지탱되었다.

     그러나 만민평등과 남녀동등권을 가르치고,

     죽은 조상을 신처럼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것을 금지한    천주교는

      당대 사회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3) 정치적 배경: 당대 정치인들은 당파싸움에 몰두했다.

    정권을 잡은 노론들은   반대파벌인 남인들이

    천주교와 관련되는 것을 단죄했다.

    또한 서구의 열강들이 천주교를 통해

    조선을 침략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늘날 천주교 믿음을 파괴하는 원수는

황금만능주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택일하라고 이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