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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행을 해야 복음을 선포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연중 제5주일)
   2011/02/05  16:32

선행을 해야 복음을 선포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연중 제5주일 (마태오복음 5,13-15)

 

예수님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신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세상의 소금,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을 구원하는 빛이 된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이 참됨을 증명하기 위해 선행을 해야 한다. 우리의 선행은 이기심과 무관심과 불의와 독선과 폭력이 판을 치는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 된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생명에 필요한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듯(마태 5,45), 우리도 하느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배려해야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베푸는 선행의 혜택을 받으면 우리에게 선행을 할 수 있게 해주시는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우리를 구원의 빛으로 보고 우리의 헌신적 삶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러 모여들 것이다. 전교하는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자질을 갖추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심판의 척도가 자비나 선행이라고 이르시며 선행으로 남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사람에게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마태 25,31-46).

우리가 빛이 되기를 포기하면 어둠 속으로 빠져 다 함께 파멸의 길을 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계기는 오늘날 내세신앙을 파괴하는 무신론적인 가치관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기 때문이다. 비신자들은 우리가 마치 내세가 없는 듯이 사는 것을 보면 믿음을 찾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돌아간 부자청년(마르 10,17- 22)처럼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내놓기 싫어하면 하느님께 심판을 받고 대중에게 무시당하게 된다. 비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제자들만이 자신의 구원을 하느님께 간청할 수 있다. 그러나 비신자들의 구원을 소홀히하는 것은 자신의 구원을 거부하는 짓이다. 이는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남도 나를 행복하게 하려고 애쓰는 반면, 내가 남의 행복에 무관심하면 남도 나의 행복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통해 안녕과 행복을 얻기 때문이다.

선행은 반드시 물질로 도움을 주는 것만이 아니다.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도 훌륭한 선행이다. 비가 올 때 우산을 그에게 건네주지 않더라도 그와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사랑이다. 아무리 바빠도 마음이 아픈 그를 기다리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가 기쁜 일을 맞이하면 내가 기쁜 일을 맞이했을 때보다 더 크게 웃어주는 것, 그의 건강을 위해 그가 마셔야 하는 술잔을 내가 대신 마셔주는 것, 이 모든 것이 훌륭한 선행이요 세상의 소금이요 구원의 빛이다. 금방 잊어버리는 작은 입맞춤이나 미소, 친절한 시선, 마음에서 나오는 찬사, 길을 가다가 행여 다칠세라 걱정해주는 마음, 그가 잘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자세, 이 모든 것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준비 자세다. 이처럼 작은 배려와 정성으로 이웃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웃은 사람은 잊을 수 있어도 나와 함께 운 사람은 결코 잊히지 않는 법이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동안 어떤 한 사람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은 행복하다”(F. Mauriac).

 

 

 

잘 읽히는 서적

 

박영식, 성경과 주요교리. 가톨릭신문사 2006년(2쇄)

-----, <말씀의 등불 I. 주일 복음 묵상․해설(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

(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

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