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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통 없이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주님의 고난과 성지주일)
   2011/04/15  16:23

고통 없이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

  (주님의 고난과 성지주일)

 

마태오복음 27,11-54

 

건전하고 타당한 고난신심은 복음서에 제시된 대로 초대 그리스도교회가 그분의 고난에 대해 묵상한 내용과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영화는 성화는 비판적인 안목으로 평가해야 한다.

공관복음서 예수님은 기본적인 인간 품위조차 지키지 못하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셨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발가벗긴 채 땅 위에서 꾀 높이 매달리셨다. 야수들이 시체를 뜯어먹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형 집행인 하나가 고통의 극치 속에 계시는 예수께 고통을 들어주려고 해면에 식초를 적셔 막대기에 달아 입가에 가져다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인류구원을 위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려고 결심하셨기 때문에 식초를 받아 마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양팔이 높이 올라가 있기 때문에 호흡하시기가 어려웠다. 이따금 사형 집행인들은 사형수의 몸을 떠받쳐 호흡할 수 있게 하여 더 오래 동안 고통을 받게 하기도 했다. 사형수는 기진맥진하여 질식해서 혹은 과다출혈로 혹은 체내 분비액의 결여로 죽는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부정적 사건이나 실패작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의 고난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을 실현하시는 것이다(마르 14,32-42.49 병행).

예수님은 제자들 중 하나가 당신을 체포하러 온 대사제의 종의 귀를 칼로 자르자 그를 고쳐주셨다(루카 22,50-51). 또한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분은 원수들을 용서하고(루카 23,34),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강도를 회개시키고 그에게 낙원을 약속하셨다(루카 23,41- 43). 재판을 받으시는 예수님은 멜 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반대로 폭력 앞에 철저하게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재판을 주도하고 계셨다. 또한 그분은 당신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빌라도 앞에서도 묵비권을 행사하실 정도로 하느님의 뜻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하셨다(마태 27,14). 나아가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덜어주는 식초를 마시기를 거절하심으로써 겟세마니 동산에서 확인하신 하느님의 뜻, 즉 인류구원을 위해 속죄의 희생제물이 되시려는 뜻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려 하셨다(마태 27,34).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를 사랑하시어 고통을 달게 받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당대 집권층의 폭력 때문에 강제로 고통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진해서 고통을 받으신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일을 하기는커녕 벌 받을 짓만 하는데도 우리를 사랑하여 십자가 고통을 받으신다.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아가패)을 실천할 힘을 주시려고 고통을 받으신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종말의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백인대장이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했을 때 그분이 이미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났다. 이 죽음 덕분에 유다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한다(마태 27,51). 그분의 죽음은 구약시대의 끝이고 그리스도 교회의 탄생을 뜻한다(마태 27,54). 또한 그분의 죽음 덕분에 죽은 이들이 부활할 희망을 얻었다(마태 27,51-53).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전 인류를 이기심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한 승리를 뜻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고통받고 목숨을 바칠 용기와 힘을 주는 하느님의 은혜이다. 이처럼 복음서에 제시된 참된 고난신심은 이러한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끊임없이 이기심을 죽이는 고통이 없이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사랑 없이 못 살듯이, 고통 없이는 살 수 없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괴테).

사람은 사랑과 고통을 받아야만 변화된다(F. Bacon).

쉽고 편안한 환경에선 강한 인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련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강한 영혼이 탄생하고, 통찰력이 생기고, 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며, 마침내 성공할 수 있다(Helen Keller).

고난은 인생을 위대하게, 깨끗하게, 깊게 한다. 상처가 깊은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향기가 그윽하다. 절망, 어둔 굴속에 갇혔다가 해방되어 나온 사람이 풍기는 향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미롭게 한다. 고난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크고 작은 고난을 불행으로 여기지 말고 위대한 인생을 만들어주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여겨라.

고통이 없는 사랑에는 생명이 없다(토마스 아 켐피스).

예술은 슬픔과 고통에서 탄생한다(피카소).

“하느님, 당신과 이웃을 위해 고통을 받게 해주시든지 아니면 저를 빨리 당신 품속으로 데려가시든지, 이 둘 중 하나만 허락해주소서!”(대 데레사).

신생아실에서 한 어린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운다. 그런데 울보를 골라 혼자 있게 하고 그의 울음소리를 들려주었는데도 울지 않았다. 이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임을 가리킨다. 이타적인 행위는 본능이라는 것이다. 미국 듀크(Duke) 대학에서 행한 실험 결과 이타적인 프로그램을 컴퓨터로 작동하는 경우 뇌의 작용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아냈다.

 

 

잘 읽히는 서적

 

박영식,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11년 3월 초판 3쇄

-----, <말씀의 등불 I. 주일 복음 묵상․해설(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 성경과 주요교리. 가톨릭신문사 2006년(2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

(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

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가톨릭출판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