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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현세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려고 준비하는 시기(사순 제5주일)
   2011/04/08  19:41

현세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려고

준비하는 시기 (사순 제5주일)

 

요한복음 11,1-45

 

사랑하는 사람이 이 지상에서 영원히 눈을 감으면, 그의 죽음은 아무리 부정해도 돌이킬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일 뿐이다. 이별의 슬픔이 어두운 그림자처럼 그의 가정을 덮어 버린다. 외형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한 줌 흙, 십자가, 죽은 이의 이름, 한 가닥 이력서, 꽃과 촛불 뿐이다.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추악한 육체, 이것이 우리 모두의 운명이다. 달리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타와 마리아도 오빠 라자로를 잃었고, 예수님도 사랑하시던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분은 그의 가족들에게 내세가 있기 때문에 세상종말에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위로하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이전에는 아무도 말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11,25). 예수님은 이 말씀을 우리에게도 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죽더라도 지금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그분과의 만남 속에 있다. 이 만남 속에 생명과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는 미사에 참여하거나 성체조배를 하거나 기도를 올릴 때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만나 성시간(聖時間)과 성소(聖所) 안에 머물고 그분의 영원한 세계 속에서 살게 된다.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영원한 생명이 실현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전례를 거행하는 공동체가 하느님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셨음을 기억하면, 영원한 생명이 우리 마음속에 실현된다.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끈이기 때문이다. “영원이란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분의 부활과 생명에 동참한다. 이처럼 오늘의 복음은 부활 대축일을 예고한다.

지금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해 불편한 심기를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 되어 훗날 두고두고 괴로워하게 된다. 노년의 슬픔을 견디기 어려운 것은 신체나 기억력의 쇠퇴가 아니라 길고 긴 추억의 무거운 짐 때문이다(W.S. Maugham). 아름다운 기억은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반면, 나쁜 기억은 마음을 천박하게 만든다. 함께 비를 맞으며 어렵고 험한 일을 마친 좋은 기억을 떠올려보자. 자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자기 행동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세 가지 찾아내고, 왜 좋았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생각해보자. 단 몇 분의 사고로도 우리의 뇌는 더욱 더 건강해지고 독창적인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사고방식이 긍정적이어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잘 읽히는 서적

 

박영식,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모세오경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11년 3월 초판 3쇄

-----, <말씀의 등불 I. 주일 복음 묵상․해설(가해)>

가톨릭신문사 2007년

-----, <구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2]. 전기 예언서

(역사서)와 후기 예언서의 주된 가르침> 가톨릭 출판사

2008년

-----, <신약성경에서 캐내는 보물[1]. 마르코복음, 마태오

복음, 루카복음, 사도행전의 주된 가르침>가톨릭출판사

2009년